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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05. 2021

추운 겨울바람과 함께 먹는 명태조림

- 사람의 정성과 인연에 관하여



오랜만에 후배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그 사람은 한 사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그 위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를 통해 그에게 도움을 주거나 그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함께 만나는 것이다. 더구나 그가 살고 있는 환경을 내가 간접적으로 만나는 것이고 더욱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은 그동안 그가 누려온 생활 반경 속 음식 자산을 내가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 사무실 안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3년 전에 새롭게 단장한 디자인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인다. 사무실 디자인이 너무 마음에 들어 물어보니 인테리어 대표가 매일 직원들이 퇴근한 저녁에 음악 틀어놓고 차 한잔 마시면서 한 땀 한 땀 칠했다고 한다. 요즘도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다. 전체 공사 가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세심한 디자인과 칠에 감탄을 거듭했다. 그리고 군데군데 일상의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로해줄 약간은 여유 있는 웃음 요소들이 있어서 한번 더 감탄했다.


규격화되지 않은 책상들도 멋져 보인다. 퇴근한 직원 선생님들 허락을 받지 않고 사진을 찍는 무례함을 용서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사무실 군데군데 색칠들은 계획요소를 벗어나 자유로웠지만 정성이 담겨있지 않다면 어색해 보일 수 있는 그림들이 전체적인 주요 색감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차를 마실 수 있는 탕비실은 식당의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림을 연상시켰다. 천정과 바닥도 아늑함을 더해주고 회의실의 디자인도 역시 자유롭게 구성되어 있었다. 예산을 많이 들였으나 뭔가 어색해 보이거나 딱딱하고 경직된 곳은 많이 가봤지만 이렇게 예산을 별로 들이지 않고 어떤 사람의 정성으로 만든 곳이라고 생각하니 부러웠다. 그 정성과 가치가.

불암산 가는 길에는 다양한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명태조림을 제안하길래 워낙 좋아하는 음식이라 오케이를 연발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맵거나 간이 세지 않냐고 물어보니 전혀 아니라고 해서 안심한다. 몸에 쌓인 여러 가지 독성을 풀고 술독을 푸는 효과가 있는 음식이라는 글들을 보고 있는 사이 먼저 콩나물국이 등장했다. 명태 머리와 같이 삶고 전혀 간을 하지 않아 콩나물의 시원함과 명태의 머리에 담긴 맑은 진액을 먹는 느낌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밥상에 생선이 오르면 늘 머리 부분을 드셨다. 명태조림을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두육미에 대해 상반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르신들이 아이들이 마음속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생선을 먹도록 한 깊은 배려가 있다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머리에 복잡한 부위들이 융합해서 제공하는 미감이 실제로 있다고 하는 생각이 공존한다. 생선 머리를 들고 씨름하다 보면 늘 아버님이 생각난다. 동태 머리를 우려낸 국물을 떠먹으며 돌아가신 아버님과의 밥상을 추억한다.


명태는 부드럽고 촉촉하며 입안에 착 감긴다. 은은하고 옅은 바다내음이 조용히 밀려와 온 몸을 감싸 안는다. 특별히 삶아주신 라면과 콩나물을 양념에 무쳐서 같이 곁들여 먹는다. 김에 싸서 먹는다. 잘 익은 양념 속 무는 아침 안개처럼 포근하다. 양념을 씻어낸 백김치는 본래 김치의 양념의 여운과 함께 시큼한 맛이 미각을 한껏 자극한다. 밖은 춥지만 내장안은 명태살들로 아늑하게 차오른다. 계란찜을 더하고 나니 밥은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떡살은 단단하지 않고 군데군데 속살이 조금씩 터져 나와 한결 부드럽게 입안에 감긴다. 명태조림의 촉촉한 여운과 함께 후배와 나눈 대화들이 허공에 옅게 배어서 조금씩 동심원처럼 흩어져 나간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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