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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03. 2021

쫀득하고 촉촉한 족발과 시원한 막걸리

- 생각이 입맛을 만든다

겉으로 드러난 사물의 깊은 곳으로 탐구해 들어갈 때, 나는 언제나 메마른 듯 하지만 단번에 파고드는 사전적 정의를 좋아한다. 족발은 돼지의 다리를 양념한 국물에 푹 삶아내 그것을 편육처럼 썰어낸 것으로 나와있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슈바인학센(Schweins Haxen)은 돼지 다리를 구워서 만드는 요리다. 글자 그대로는 돼지 무릎이다. 슈바인 학센은 구워서 그런지 치킨과 같은 질감을 선사한다. 족발의 미덕은 촉촉함에 있다. 어떤 국물에 얼마나 잘 삶는가가 맛의 비결이 될 터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그건 내 영역이 아니다. 나는 오직 먹는자로서 갖춰야할 최소한의 앎만 있으면 된다.


육류를 전혀 먹을 수 없던 시절 시장에 가면 순대와 족발이 있었다. 그 냄새가 싫어서 어머님 뒤를 따라가다가 다른 길로 가서 다시 합류했다. 뭔가 느끼하고 기름진 냄새가 살갗에 닿는 것 같아서였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드디어 육류 세계에 편입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입이 짧아 치킨이나 삼겹살 정도였지 그 이상은 확장하지 못했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육류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일본이나 불가리아의 장수촌에서 삶은 돼지고기 요리를 주로 먹는다는 얘기에 조금씩 족발과 보쌈을 접하게 되었다. 뇌가 설득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어떤 음식을 싫어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뇌의 특정 영역이 거부하는 것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생각이 음식을 밀어내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생각이 음식을 끌어당기는 일은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진다. 음식의 맛을 알게 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를 훈련시키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족발은 어떤 식재료를 바탕으로 삶느냐에 따라 그 맛이 결정된다. 너무 진한 향기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고 너무 옅으면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에 그 냄새는 없애면서도 식감을 자극할 수 있는 은은한 향이 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의 족발은 은은한 향으로 우선 후각을 자극한다. 비계와 살의 비율이 적당한 한 점을 고른다. 상추나 깻잎 혹은 배춧잎 위에 그 한 점을 올린다. 새우젓은 돼지고기 소화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거기에 무말랭이와 배추 겉절이와 부추무침을 약간 얹고 마늘과 비빔막국수를 약간 얹어놓으면 먹을 준비가 된다.


막걸리 반 잔을 쭈욱 들이켠 뒤 그 쌈을 입에 넣는다. 그 순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이 반복적인 동작이 끝나는 아쉬움을 어떻게든 뒤로 유보하려는 마음만이 나를 어지럽힐 뿐이다. 그래서 잠시 이 동작을 멈추고 고추기름의 매콤함과 순두부의 부드러움 그리고 계란의 질감을 한 숟가락 안에서 음미한다. 서울 막걸리를 아주 잘 아는 후배와 얼마 전 통화했다. 옅은 초록색 병에서 맑은 색 병으로 바뀐 것뿐만 아니라 맛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얘기하니, 후배는 전혀 아니라고 했다. 디자인만 변경했다고 한다. 이 역시 디자인을 보고 난 나의 생각이 막걸리의 맛을 조금 더 끌어올렸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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