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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02. 2021

새해 첫날 따끈한 떡국 한 그릇

지난해와 새해의 간극은 단지 한 순간이다. 어제였고 오늘일 뿐이다. 2000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고 당장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했지만 단순한 하루가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때 이후로 해를 넘긴다는 것은 평범한 하루가 지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해를 넘긴다는 의미는 두되 요란하게 보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력을 주로 사용했던 집안의 내력으로 늘 설날에 떡국을 먹었다. 그 떡국은 보통 떡국이 아니었다. 어머님께서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아 차가운 윗목에 놓아두었다가 딱딱하게 식으면 꺼내서 떡을 썰었다. 철이 들며 어머님의 일을 도와드렸는데 딱딱해진 떡을 가지런히 썰다 보면 손에 물집이 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먹는 떡국은 왠지 더 맛있고 귀하게 여겨졌다.

다양한 잡생각과 공상을 하다 보니 새해 첫날 오후 다섯 시가 되어서야 시장기가 밀려온다. 저녁에 떡국을 먹기로 했으므로 잠시 시장기를 면하려고 무청시래기 무침(비타민과 미네랄 식이섬유소가 골고루 들어가 있다)과 배추 겉절이(절임 과정을 짧게 하여 채소 표면 부분만 소금물이 침투할 수 있도록 한 후에 양념한 후 먹는 음식)와 같이 금방 압력솥에서 나온 밥을 먹는다. 된장으로만 양념을 한 무청은 잘 데쳐서 부드럽고 된장의 구수한 맛과 어울려 한 주걱 밥을 세 번씩이나 뜨면서 겉절이와 먹었다. 헐 떡국은 먹을 수 없을 것만 같다.

계단 오르기를 하러 나가기 전 아내가 만들어놓은 떡국을 위한 국물 냄새가 온몸을 자극한다. 다시마, 파뿌리, 새우와 멸치 그 각각의 특성이 녹아있다. 운동을 마치고 떡국을 받아 든다. 한 끼니에 담겨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한다. 내 몸을 만들어주고 내가 생각하게 하고 삶이 즐겁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는 그 한 끼니. 집에서 먹는 한 끼니는 숨 쉬는 공기와도 같다. 가루 후추에 대한 편견을 오늘은 보기 좋게 넘어섰다. 잘 끓여진 국물에 떡살이 흩어 위로 김과 후추를 넣으니 한 그릇으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한 살 더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한 끼니를 더 소중하게 더 맛있게 느낄 수 있는 힘이라고 문득 생각했다. 떡국처럼 다양한 재료가 섞인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을 보았다. 한 사람의 삶이 온 세상과 만나는 지점을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광대하게 때로는 비극의 한가운데에서도 애절하지만 따뜻한 소통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압축적이면서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섞여있다. 눈으로 떡국을 계속 먹는 느낌이 들어 아늑하고 편안했다. 후배가 보내준 새해 메시지가 진리가 되어 반짝 빛나는 밤이다. 올해 좌우명으로 간직하고 실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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