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Feb 03. 2021

글을 쓴다는 것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은 지나가면 모두 과거의 추억이 된다. 과거는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그런데 글을 써둬서 그 기록을 들춰보지 않으면 그 기억은 이내 장기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내가 그것을 다시 떠올릴 확률은 낮아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의 단면을 기록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삶의 흔적을 남겨놓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살고 난 뒤의 이야기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글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나의 과거의 모습에서 현재까지 어떻게 진화하고 있고 어떤 생각의 주제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창이다. 


물론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모든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다면 아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적당한 망각의 균형점에 과거의 경험들이 들어와 그래도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가져와야 할 과거가 많지 않거나 우울한 일들만 생각이 난다면 얼마나 삶이 고단할 것인가? 지난 시간 속의 빛나는 순간들을 가져와서 지금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그 순간들을 추억하면서 지금을 견디게 해주는 힘을 기록은 가지고 있다. 어떤 분량의 글을 쓰고 얼마나 멋있게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난중일기의 문장들은 무게감이 있다. 몇 줄 쓰지 않은 그 가운데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장군의 고뇌가 한껏 묻어있되 그게 몇 단어 몇 문장으로 응축되어 있다. 글을 쓴다면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겨우 내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기도 바쁘다. 그러므로 바쁜 일상이 결코 미덕은 아니다. 바쁜 일상을 정리하고 정돈해서 내가 생각하고 글을 쓸 여유의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 그래서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잠에서 문득 깨어나 지난 21년간 써온 꿈 일기장에 무언가를 막 적었다. 오늘은 어제의 일상에 대해 나의 무의식이 무슨 말을 그리 많이 걸었던지 사건이 많아 두 페이지 가까이 기록했다. 그 기록은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칼 융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내가 어떤 심리상태에 있고 나의 무의식이 의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해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쓴 글을 며칠 뒤, 몇 달 뒤, 몇 년 뒤 다시 보게 되면 당시의 나의 심리상태와 무의식의 메시지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해석은 가능할 것이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의 나를 위로하며 어제보다 진전된 나를 만나기 위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은 이제 고단한 일도 아니고 의무감에 젖은 일도 아니며 약간은 즐거운 마음으로 쓴다.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고 담담하게 삶의 흔적들을 써보리라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의 양면성과 마음의 평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