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에 몸을 맡기다

by 새로나무

입춘이 2월 3일이었다는 것을 오늘 확인했다. 비가 내리고 싹이 트는 우수 2월 18일도 한참 지났다. 2월, 3월처럼 시간의 순서대로 흘러가는 양력보다 24절기로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음력이 더 정감이 가는 날이다. 저 산너머에서 봄기운과 봄바람이 슬며시 불어와 가슴을 신선한 공기로 가득 채운다. 흐리지만 맑은 공기도 반갑고 뚜렷이 보이는 산들과 나무들도 정겹다. 첫 세트를 마친 21층에서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내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 숨 가쁘게 일주일을 달려 그 끝자락에 서서 다시 손을 들여다보니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들은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애초부터 흩어져버릴 것이라면 처음부터 움켜쥐지 말고 슬쩍 대고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막상 상황이 벌어지면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만다. 문득 저 멀리서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태극기처럼 봄바람에 나를 그냥 맡겨버리는 상상을 해본다. 힘들이지 않고 무엇에 집착하지도 않고 그냥 내맡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내맡기는 것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부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하루하루를 허망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말을 들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그렇다. 내 삶에 대해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 흔들리면서 사는 것은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남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연에 몸을 맡기고 자유스럽게 창공을 나는 저 새의 모습처럼 나도 하루하루를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서 산다면 매일매일이 즐겁겠다고 생각해본다. 대지의 생명들이 싹트기 시작하는 지하 1층에서부터 21층까지 오르는 계단들은 나를 디자인해주는 공간이다. 하체와 상체를 디자인하는 것은 기본이다. 계단을 오르며 가벼운 생각들을 한다. 생각을 디자인한다. 그리고 마음을 디자인한다. 비뚤게 먹었던 마음을 다리미로 다리듯이 펴주는 역할을 계단이 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습관은 조금씩 나를 이렇게 변화시켜왔다.


3월까지는 무엇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올해의 시작일을 떠올려본다. 뭐 그렇게 안되었으면 조금 뒤로 미루면 되지. 지금 이 순간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봄바람에 맡기는 이 자유로운 기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대지가 생명을 머금고 조금씩 지상으로 밀어 올리는 지금 이 순간의 봄기운을 깊이 간직한다.


문득 조선의 왕들이 잠들어있는 동구릉 쪽 숲을 바라본다. 그들에게도 삶은 치열했을 것이고 각자가 자신들의 삶에 의미부여를 했을 텐데, 우리가 그들에 대해 역사적으로 아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한 것과는 다른 껍데기일 가능성이 높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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