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감상하며 계단 오르기

저기압으로 처지는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by 새로나무

지하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는 항상 몸이 무겁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단 오르기는 매번 힘들게 느껴진다. 계단에 다리를 걸쳐놓고 스트레칭을 한다. 양쪽 다리를 번갈아 스트레칭을 하면서 몸 상태도 살피고 하체 전체를 각성시킨다. 매 층을 오를 때의 느낌은 각기 다르다. 각층이 풍기는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계단 모양은 같으나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분위기와 계단에 적치된 약간의 물건들, 그리고 안과 밖의 냄새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오늘은 비가 와서 몸이 많이 쳐진다. 우리 몸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공기의 영향을 받는다. 공기는 우리 몸을 누르고 몸은 밖으로 밀어내는 내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맑은 고기압에서는 공기가 우리 몸을 적당히 눌러주어 내압과 균형을 이루며 신체 활동성을 높이고 상쾌한 기분을 만든다고 한다. 낮은 기압은 우리 몸을 적절하게 누르지 못하고 몸이 부풀려고 하는 힘이 강해 지므로 혈액과 림프의 순환이 떨어지고 몸이 붓는다고 한다.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신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이해가 간다. 바로 붓는 현상 때문이다.


저 빗속에서 10여 년 전 다섯 평 텃밭을 고르던 시절이 떠오른다. 모종을 심기 전 땅속으로 스미는 빗줄기가 반가웠었다. 대지에 수많은 싹들이 움트며 생명나무들이 자라고, 나는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 생명들을 먹는 순환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는 자각으로 빗줄기를 쳐다본다. 마음 한편에 조그맣게 감사함을 담고 계단을 오른다. 그래도 아주 춥지는 않아서 저층부터 계단 창문을 조금씩 열었다.


저층에서는 계단 창문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진 빗물들의 촉촉한 물빛 내음이 섞여있다. 중간층 정도에서는 바람의 세기가 조금 잦아든다. 건물 사이의 기류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잦아든 바람 사이로 옅은 봄기운이 같이 밀려오지만 그게 대지에서 뿜어낸 봄기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8층 정도를 지나니 비로소 저 멀리 숲 속 대지에서 출발한 봄기운이 바람을 타고 은은하게 창문으로 밀려들어온다.

계절의 변화는 신비롭다. 매년 느끼는 봄기운의 미세한 느낌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번 봄이 오면 바람에 실려오는 봄기운이 새롭다.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봄비가 내리는 지금의 봄기운은 약간 싸늘하지만 신선하다. 21층에 올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태극권 기본체조를 한다. 왼 어깨와 오른 어깨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어깨의 피로 상당 부분이 해소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물론 내일이 되면 다시 약간의 통증과 시원함이 섞인 이 느낌을 그대로 느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두 번째 세트부터는 한결 몸이 풀어져서 잘 오르게 된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발을 통해 발목과 정강이, 허벅지에 전해지는 자극은 매번 새롭다. 내 몸의 세포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계단을 오르면 내 몸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가라앉아있어서 잠들었던 근육 세포들을 하나하나 깨우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 같은 착각이 밀려온다. 낡은 생각과 고정관념과 편견과 묵은 감정들도 새롭게 깨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자극을 주는 시간을 매일 가진다면 나는 얼마나 더 새로워지고 멋있어질 것인가?


네 번째 세트를 마치고 나니 등과 가슴에 땀이 차고, 이마에도 땀방울이 연신 맺힌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오르는 기적을 꿈꾸었으나 온갖 잡생각과 공상과 자존감 떨어지는 비교에 오늘도 나를 내맡기고 말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노력하는 이상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다리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할 때 몸과 마음은 한결 더 상쾌해졌다.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 봄비와 봄기운과 대지의 생명력에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운동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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