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손들이 가꾸어온 시장 생태계

- 수원 팔달문을 둘러싼 시장들

by 새로나무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얘기했다. 그의 책은 어렵다. 오직 나에게는 대학시절 서양 경제사상사 수업시간에 그에 대해 들은풍월만 남아있다. 가끔 신문에서 기자들이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얘기할 때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손 뒤에 숨어 가증스러운 미소를 던지고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들을 건들지 말아야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손들은 자기들만 잘 아는 것 같은 말투가 별로 좋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에서 보이는 손이 만들고 보이는 손이 사는 시장을 좋아한다. 믿음과 신뢰 속에 정성과 노력이 담긴 물건들을 주고받는 모습이 좋다. 보이지 않는 손이 없어서 좋다. 모든 것들이 분명히 이해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허망한 생각을 차창밖으로 날리며 수원을 향했다.




이번에도 아들이 운동도 하고 유튜브 영상 촬영도 한다고 해서 데려다주러 길을 나선다. 수원 장안 시장에 대한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 이번에도 잔뜩 기대하고 길을 나선다. 아직 봄기운의 옅은 맛이 살아있다. 늦잠으로 오전을 보내기에는 아까운 맑고 화창한 날씨다. 선명한 구름들은 언제나 같은 모양으로 나타나지 않고 매번 새로운 디자인으로 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가는 길에 라디오에서는 어린이날 특집으로 동요가 나온다.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새싹', '금수강산 이어받을' 뭐 이런 단어들이 귀에 거슬렸다. 자유로운 시간을 갖고 마음껏 놀아라는 얘기는 없고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계몽적인 내용이 거슬렸다. 노래를 하는 막내딸에게 어린이날 부를만한 노래 하나 만들자고 얘기해야겠다.

주차할 곳을 찾아 조금 돌면서 거리 풍경이 깨끗하고 쾌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골목마다 잘 정비된 듯한 느낌이 들어 기분 좋다. 처음 보는 팔달문은 그 자태가 늠름하다. 세월의 풍상을 잘 견딘 건지 복원기술이 뛰어난 것인지는 몰라도 팔달문은 단단해 보였다. 펄럭이는 깃발도 옛 시절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팔달문 시장 앞에는 할머니들께서 각자 키워온 채소들을 좌판에 널어놓고 있었다. 정비된 시장의 가게와 좌판이 공존하는 시장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팔달문 시장은 주로 옷가게들이 많았다. 이 시장을 검색하고 왔는데 저편으로 '못골 종합시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찾던 것들이 여기 있다. 먹을 것들이 잔뜩 있고 사람들 발길이 분주하다.


아직은 아침나절이라 점심때 식구들과 먹을 것들을 찾아 일단 저 끝까지 가본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우선 두부를 두 모 샀다. 직접 만드는 곳이라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두부를 달라고 말을 하는 순간 말을 하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고 그리고 주인이 그 말을 받기까지 잠시 정지된 화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들을 내려주고 30여 분동 안 혼자 돌아다녔기 때문인가 하는 이상한 기분과 동시에 내가 말을 하고 내 말을 알아듣고 물건을 내어주는 그 과정이 너무 신비롭게 느껴졌다.


아내와 같이 왔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쪄서 말린 문어인데 맛있어 보였다. 가게 주인께서 확신에 찬 얼굴로 물어보신다. 이거 드신적 있냐고 하시기에 이 시장에 처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정말 맛있을 거라고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필요한 말만 주고받는 세상은 메마르다. 이런 촉촉한 대화를 주고받다니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느낌이다. 그때부터 물건들이 계속 내 눈에 들어온다. 직접 굽고 계신 김을 육천 원에 세 봉지 샀다. 문어와 김은 집에 와서 먹어보니 완전 대박이다.

이번에는 점심 식사용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족발을 한 봉지 샀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 뭔가 특식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열어보니 식었는데 전혀 비린내가 없고 맛있었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이번에는 떡집에서 시루떡과 인절미를 샀다. 인절미는 소금을 넣은 참기름을 찍어 먹었다. 밥 짓는 냄새와 떡향기는 같은 뿌리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만들어낸다. 오늘은 김에 만 밥과 인절미를 번갈아 먹는다. 떡과 밥을 동시에 먹고자 하는 내 몸속 욕구들이 서로 사이좋게 타협하니 행복하고 편안하다. 옥수수를 세자루 샀다. 손이 묵직하다. 더 사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이쯤에서 돌아가야겠다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차에 물건을 싣고 가기 전에 서장대 올라가는 길로 잠시 산책을 했다. 마치 가을 숲 속처럼 숲 안쪽은 떨어져 쌓여있는 나뭇잎 냄새가 은은하다. 길은 한가롭다. 계단 사이에 피어있는 노란 꽃의 여리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내뿜는 모습을 닮고 싶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팔달문을 중심으로 한 시장 생태계는 보이는 손들의 세상이다. 대여섯 개의 시장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들을 내어놓고, 찾아오는 분들의 신뢰와 믿음으로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보이는 손들의 세상이다. 그리고 시장들은 각자의 존재를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시장 형성 초기 그리고 시장이 뒤섞이는 시기에 겪었을 이해충돌을 아마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서로 잘 정리되도록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 뱃노래는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시장에서 사 온 물건들을 먹고 보면서 시장은 나를 늘 설레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보이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시장 생태계는 어떤 것으로도 재현 불가능한 오직 그 순간만을 나타낸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순간을 느낀다. 앞 뒤 가게에서 서로 대화하고 물건을 주고받고 기계 소리가 들리는 이 풍경을 어떻게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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