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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n 26. 2021

갑오징어와 낮술의 낭만

1987년 여름 나는 매일 습작시를 썼다.

아니 시라기보다는 랩에 가까운 언어였다. 

메모장에 갈기듯 써넣은 붉은 글들은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친구는 나와는 달리 제대로 된 시를 썼다.

학교 근처 가게에서 거의 100일 가까이 만났다.

낮술과 저녁 술을 번갈아 나눠마시면서 각자의 시를 읽고 감상을 주고받았다.

거친 세월의 질감과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절

그렇게 보낸 시간들은 가끔씩 올려다본 밤하늘의 별들이 되어 내 가슴에 들어왔었다. 

시의 내용은 사라졌으나, 시를 통해 서로 만났던 아름다운 모습이 그림 한 장 정도로 남아있다. 


『자산어보』에는 “남 월지(南越志)에서 이르기를 그 성질이 까마귀를 즐겨 먹어서 

매일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것을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면 

곧 그 까마귀를 감아 잡아가지고 물속에 들어가 먹으므로 오적()이라 이름 지었는데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이라는 뜻이다라고 하였다.”라는 글이 있다


『전어지』에도 “뱃속의 피와 쓸개가 새까맣기가 먹과 같으며 사람이나 큰 고기를 보면 

먹을 갑자기 사방 여러 자까지 내뿜어서 스스로 몸을 흐리게 하므로 일명 흑어라고 한다. 

······풍파를 만나면 수염(더듬 다리를 말함)으로 닻줄처럼 닻돌을 내리기 때문에 남어라고도 한다.”  


표준명은 '참갑오징어', 몸통 부근에 딱딱한 뼈가 있는데 갑옷같이 딱딱하다고 하여 갑오징어로 불려졌다. 




오후 2시 친구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친구가 내 잔에 막걸리를 따른다. 

각자의 잔에 35년 전 추억의 순간들을 살짝 뿌려 넣는다. 


뽀얗고 두툼한 갑오징어 살 위에 살짝 파슬리를 뿌려 보기에도 멋진 안주가 등장했다.  

한 입 베어 물자 부드럽고 촉촉한 질감이 입안 전체를 자극한다.

그가 머물렀을 바다 깊이와 헤엄친 날들의 시간의 무게를  상상해본다. 

전남 무안 바닷가 근처 가게에서 입에 꺼먼 먹물을 묻혀가며 

먹던 갑오징어의 추억이 살짝 밀려왔다. 


낮술의 취기가 서서히 번져가면서 각자의 추억들이 테이블 위에 소환되었다. 

느긋한 시간이 몸과 마음을 아늑하게 감싸주었다. 


2010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 <낮술>은 

배우들 각자의 개성이 강하게 살아있어서 진지하게 웃을 수 있는 영화였다. 


비슷한 경험은 아니지만, 친구의 결혼식에서 취했던 일

직장에서 동료들과 점심때부터 달렸던 일들이 영화와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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