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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n 16. 2021

홍어의 향기에 취하다

사람의 향기에 취하다

S교수는 내가 기획한 국책 사업을 수주받은 뒤 채용절차에 따라 나와 같은 조직에 근무한 후배.

입사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대부분의 업무를 파악하고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를 제시해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인공지능급의 학습 속도도 속도지만, 새로운 혁신 아이디어는 나를 가슴설 레게 했다.

애초 이 사업을 기획했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함께 일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업의 취지를 펼쳐보기도 전에 나는 A텐조에 의해 다른 부서로 옮기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부채의식이 나무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가끔씩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본인의 역량을 점점 더 펼치되,

조직 속에서는 인정을 잘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내가 기획한 사업의 취지는 S교수처럼 비즈니스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기술을 사업화하는데 꼭 필요하고 그들의 역량을 키워줘야 하며, 학생들에게도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텐조들은 그것을 이해 못한다.


S교수는 그동안의 업무능력과 학업 두가지를 동시에 도전하여 국립대 전임교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으로 멋진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잰 발걸음을 옮긴다.   


S교수가 추천한 곳으로 향한다.

홍어!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설 레게 하는 단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후배와 S교수 이렇게 같이 모였다.

음식은 사람들의 인연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서로 입맛과 취향이 다른데 공유할 수 있으려면

깊고 넓은 내공을 갖춘 사람이 만든 음식이라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추 된장국!!

국물 한 모금으로 이 집의 내공을 단번에 알아챘다.

매콤하면서도 멸치의 바다향기가 살아있고 거기에

깊고 진한 된장의 날카로움과 단맛을 동시에 맛보았다.  

부드러운 시원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얼른 한 그릇을 더 부탁드렸다.

내공 깊고 먹음직한 반찬이나 국물을 아무런 조건 없이 리필해주실 때 감사한 마음 깊은 곳에서 맛집의 위엄은 완성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추에 된장을 찍어 한 입 베어 문다.

된장은 배추와 잘 어울리도록 전략적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맛은 깊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적당한 깊이다. 추는 늘어지지 않고 단단한 줄기와 싱싱한 잎을 아낌없이 나에게 준다.


홍어무침 역시 그냥 나온 반찬이다.

3콤(새콤, 달콤, 매콤)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흙내음 진한 향기 머금은 도라지,

싱싱한 즙을 잔뜩 간직한 미나리,

달고 부드러운 양파들이 홍어회와 어울려 내는 맛은 더욱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메인 요리는 도대체 얼마나 맛있을까?

이렇게 잽에 의해 무너지고 싶지 않다.

나는 메인 요리의 맛 속에서 안식을 취하고 싶었다.

내 입안 미각 수용체들은 즉각 이 맛을 느끼고 기억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배다리 막걸리를 나눠 마시면서 메인 요리를 기다린다.


홍어는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편육은 홍어에게 주전 자리를 양보했지만, 뒤에 서있는 자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

역시 이 둘을 감싸는 융합 역할은 김치가 한다.

새우젓과 마늘과 된장은 삼합이 입안에서 맛이 터질 수 있도록 훌륭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홍어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맛을 완만한 속도로 입안에 뿌려주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것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에 대한 부푼 희망을

막걸리 잔에 담아 시원하게 마신다.

지금 이 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들의 우정도 함께 마신다.

마지막 홍어 한 점이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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