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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18. 2021

늦은 꽃구경과 막회

단골 메뉴의 잔상

자가격리 2주 만에 첫 출근 후 퇴근길에 후배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잠시 망설이다가 만나기로 했다. 집과 직장 주변의 벚꽃들은 벌써 지고 있었다. 격리 들어가기 전 벚꽃은 피지 않았으나, 끝나고 나니 이미 꽃들이 지기 시작했다. 섭섭했다.  후배님과의 만남이 그 섭섭함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7세되던 해 아버님과 어머님 손을 잡고 삼척 도계 시장의 끝이자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의 배경이 된 동네에서 처음 벚꽃의 향기와 빛을 보았다. 칙칙하고 약간은 어둡기까지 한 그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벚꽃은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다. 그 화사한 빛깔 속에서 행복해했었다.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 갔다가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 시점을 전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길이 전혀 없는, 그래서 앞뒤 맥락이 잘린 기억은 불편함을 넘어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 준다.  



2009년 일본 오이타에서 처음 만난 마쯔오 교수는 다음 해 서울로 출장을 오셨다. 1951년 생이시니 나와는 17살이나 차이가 났지만, 아버님이 광부라는 공통점으로 우리는 금방 친해졌고 나이를 넘어선 연대의 감정을 느꼈다. 2010년 4월 같이 올라간 남산에서는 벚꽃들이 막 지기 시작했다. 그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 마디 탄식을 하며 그가 내게 전해준 말은 "사쿠라 후부끼"였다.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일본어인데, 봄밤에 '사쿠라 후부끼'를 바라보며 벚꽃주를 한 잔 기울이면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온전히 삶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었다고 말했다. 내년 봄 4월에 꼭 오시라, 같이 '사쿠라 후부끼'날리는 탁자 위에 벚꽃주를 한잔 나누자고 했으나, 아쉽게도 그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무에 매달린 벚꽃에 감사하며, 격리기간 동안의 답답함에 대한 위로를 받았다.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들을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보고 느끼고 곧 놓아준다. 나중에 기억이 나면 자연스럽게 기억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된다. 애쓰지 말고 놓아주는 것이 답일 거라고 혼자 중얼거려보았다.



절친이 내민 '막회'라는 히든카드를 받아 들고는 뛸 듯이 기뻤다. 사람들 각자가 가진 음식 자산목록은 그 사람이 살아온 궤적의 일부이기도 하다. 음식 자산을 공유하며 공감대는 깊어가고 나의 자산목록도 튼실해져 간다. 가게를 들어선 순간 그 허름한 아늑함에 편히 기대었다. 콩가루와 초장, 양배추와 어울린 막회는 부드럽고 고소하고 맛있었다. 적당히 데친 문어와 골뱅이는 부드러웠다. 제대로 음식을 하는 곳에 오면 사실 별다른 표현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즐겁게 먹어주면 그만이다. 절친과 간만에 만난 후배님들과의 처음 만난 어색함을 지워주는 단골 메뉴는 다양한 구성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그 메뉴에 곁들인 술 한잔에 봄밤이 깊어가고 있다.




원래 단골은 호남지방에서 무당을 지칭하는 단어로 '당골'이라고도 불리었다. 정확히는 마을에서 성황당, 영신당을 관리하는 무당을 의미한다. 이 무당은 신내림을 통한 무당이 아닌 세습되는 무당으로, 매년 고정적으로 마을의 풍어제, 기우제와 같은 커다란 행사를 도맡아 하는 행사 진행 전문 직업이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큰 행사를 치르면 마을에서 해마다 일정의 사례를 받았는데, 시대가 시 나면서 점차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이후론 뜻이 바뀌어서 '단골무당처럼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손님' 내지 '그 손님이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업체'를 칭할 때 사용하게 되었다.(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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