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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18. 2021

대지의 기운을 살짝 맛보다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는 다행히 빗나갔다. 구름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간다. 언제나 완전히 다른 모양의 구름들을 보면서 일상의 작은 마음의 틈들이 메워지고 나도 모르게 구름을 따라 흘러가는 착각이 들 때가 많았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구름의 모양이 서서히 변하더니 마침내 내가 처음 본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거대한 거품 덩어리들을 하늘에 뿌려놓은 듯한 그 모습에 압도된다. 잠시 하늘을 한참 보았다. 하늘 전체가 구름으로 뒤덮인 채, 지상으로 물방울과 같은 모양의 구름들이 불룩 튀어나온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그 곡선들은 때로는 완만하게 때로는 급격한 선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약간은 두려운 마음과 함께 또 약간은 아늑한 감정이 묘하게 교차한다. 


4월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데도 여전히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오래간만에 맑은 공기를 몸 깊이 들이마시면서 원 없이 구름 구경을 했다. 


오징어 찌개를 잘하는 곳이 있다고 안내하는 후배님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친한 지인으로부터 2년 전 오징어찌개를 추천받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쓰라린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행히 오징어가 시장에 거의 오지 않아 그 메뉴는 안 하신다고 하셔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씀을 또박또박하는 주인아저씨의 말씀 어투에 믿음이 갔다. 안쪽에서 음식을 준비하시는 아주머니의 이마에서 세월의 깊이와 그 손을 거쳐간 식재료들과 그 음식을 먹고 즐겼을 사람들의 추억이 번뜩 스치고 지나간다. 


후배님이 버섯찌개와 제육볶음을 주문하고는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내가 청국장을 주문했다. 왠지 맛있을 것 같았다. 그 식당을 자주 다녀본 사람이 시키는 메뉴를 그냥 먹는 것이 좋았다. 김치가 섞인 청국장은 맛으로는 보통의 수준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구수하고 진한 청국장 냄새와 맛이었는데 거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버섯전골의 국물 맛은 그 아쉬움을 바로 잊게 해 주었다. 표고버섯과 새송이 그리고 팽이버섯과 느타리버섯은 제각기 국물 안에서 대지의 기운을 내어놓았다. 그 싸한 기운은 냄새와 맛으로 금방 감지되었다.  내가 난 곳은 어머님 뱃속이다. 대지는 어머님 뱃속과 같은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도록 하는 신비한 힘을 간직한 대지의 기운을 느낀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사람들이 점점 떠나 한적한 그런 동네는 아니지만 대로변의 가게들이 절반 이상은 사람 기척이 없는 쓸쓸한 기분을 버섯전골이 지워버렸다. 밑반찬 하나하나가 정성과 맛이 살아있다. 집에서 직접 구운 김의 향기와 밥 내음이 어우러져 어지럽다. 한 접시 정도는 더 달라고 했지만, 그 뒤 두 번에 걸친 악역은 처음 뵌 후배님께서 해주셔서 원 없이 밥과 김향기에 취했다.  


제육볶음을 먹는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막걸리를 한병 주문했다. 메밀 막걸리는 맑고 깨끗하면서도 가벼운 취기를 동반하는 맛이다. 밥반찬에서 술안주로 금세 자리를 변경했다. 생각의 변화가 어느 정도는 사물들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아니 내 생각의 변화가 내가 느끼는 맛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겠지. 단 한잔의 아쉬움은 남은 밥과 밑반찬이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밥을 더 권하는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잊고 있던 외갓집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고봉밥을 아침부터 먹었던 시골 인심의 추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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