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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l 17. 2021

밥상위의 밥이 진리 -아귀탕

해장과 끼니를 동시에 해결

제대로 된 낮술을 오래간만에 마셨다. 

낮술의 후유증은 낮동안 즐겼던 시간만큼 다음날 숙취로 돌아온다.

대개 숙취는 두통과 속 쓰림을 통해 나를 집중 공략한다.

나는 그 두 가지 공격 앞에 속수무책의 무기력 속에서 오전을 보낸다.

아슬아슬한 정신력으로 기획서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을 겨우 완성하고 

10페이지를 다듬은 후 부랴부랴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선다. 



낮술만으로 마쳤어야 하는데 집으로 와서 

막걸리 두 병을 더 마신 것을 지금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제대로 끓여진 아귀탕 국물을 몇 숟가락 떠먹는다.

쓰린 속이 진정되며, 이것이야말로 내 삶의 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 위에서 내 입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곧 내 삶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미나리의 신선한 기운이 내 몸으로 밀려들어간다.

미나리는 몸에 쌓인 독성분들을 알아서 몰아내 줄 것이다. 안심이다.

아귀탕의 간과 알과 위와 내장들은 그 따뜻한 온기를 내 몸속에 전달해준다.


온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간은 부드러운 질감과 고소한 맛을 더해 온기를 전달해준다. 

어쩐지 홍어의 그것을 닮은 모양이고 질감도 비슷하다. 

위벽은 쫄깃한 식감으로 치아의 저작기능 작동상태를 시험한다.

부드러운 내장 벽은 입안에서 조금씩 허물어진다. 

아구의 부드러운 살결은 그가 헤엄친 심해의 물결의 저항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새겨진 흔적이라고 상상한다. 

바닷속은 싫지만 물결의 부드러운 일렁임은 느껴보고 싶은 대상이다.


콩나물과 국물은 쓰린 속을 달래주는 마지막 역할을 다한다.

오래 끓여 우러난 콩나물의 즙과 후추와 다른 양념채소들의 화학적 결합은

나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처음의 국물 맛이 동굴의 입구라면 

나중의 국물은 동굴 깊숙한 골짜기의 드넓은 곳을 상상하게 한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볶음밥을 먹어야 한다.

밥은 위를 위로해주는 둘도 없는 보양식이다. 

옅게 덧칠된 국물과 밥은 김과 부드러운 양념과 결합되어 

또 하나의 음식 세계를 아낌없이 선사한다. 



밥상 위의 밥이 곧 삶의 진리다.

쓰린 속을 해결하는 동시에 끼니를 해결하게 해준 밥상앞에서

밥상위의 밥이 곧 삶의 진리라고 확신에 차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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