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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l 24. 2021

메밀 막국수의 계절

일 년 중 이와 같은 구름을 만나는 날은 극히 드물다. 

멋진 구름이 있어도 길을 나서지 않으면 그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두 가지가 맞아떨어졌다. 

가는 길에 아내를 재촉해서 구름 사진을 여러 장 확보했다.

헬싱키와 스톡홀름과 오슬로 등 북유럽 하늘에서 보았던 

다양한 흰색과 회색과 푸른색의 향연을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구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이천 공방거리에서 아내는 물건을 고르고 나는 공방거리를 오가며 구름사진을 찍었다. 

공방거리는 잘 정비되어 있고 가게들은 제각기 독특한 특색을 갖추고 있었다.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거리는 심심한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푸른 하늘에 걸린 구름들은 이 거리를 잘 싸안고 있는 듯했다.

걷는데 약간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올여름은 덥다고 예고했었다. 

그렇지만 예고된 더위라고 쉽게 적응되는 것은 아니다. 

이 더위와 시장기를 한 번에 해결할 곳은 시원한 메밀막국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무수한 이천 거리의 쌀밥집들을 애써 외면하며 집 근처 메밀 막국수 집을 향했다. 

요즘 들어 시장기를 견디는 것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비결이라는 것을 알았다.

영화 <식객>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의 조건은 바로 시장기라는 평범한 비결을 새삼 떠올려본다.


새싹 메밀을 내미는 곳은 드물다. 

춘천 IC 바로 근처의 대룡산 막국수 집에서 처음 새싹 메밀을 먹었었다. 

그중 한 곳이 집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주메뉴와 곁 메뉴는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주메뉴는 시장기를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거기에 맛이 따라온다.

그렇지만 곁 메뉴는 맛이 시장기에 우선한다. 

아울러 주메뉴를 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입맛을 돋우는 역할도 같이 수행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곁 메뉴에게 부과된 짐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번 왔을 때는 메밀만두를 곁 메뉴로 주문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메밀 해물전을 먹고 있었는데 계속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오늘은 바로 그 메밀 해물전을 주문했다. 

메밀 해물전을 받치고 있는 그릇은 철판이다. 

가열된 그대로 밥상 위에 올라왔다.

마지막 한 입을 먹을 때까지 철판의 뜨거운 기운이 전을 받치고 있었다. 

열무김치의 아삭하면서 심심한 맛과 메밀전의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이 상호 보완적이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융합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막걸리 없이 전을 한 장 다 먹다니. 

어쩌면 술을 끊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몽상을 잠시 했다. 


비빔막국수와 물막국수는 짜장과 짬뽕과의 관계와 같다.

물막국수를 먹고 있으면 비빔막국수를 드시는 분에게 눈길이 간다.

그쪽이 훨씬 더 맛있을 것 같다. 물론 심리적인 기분 이리라.

그래서 비빔막국수를 주문해서 먹으면 이번에는 물막국수가 더 맛있어 보인다.

아내와 둘이 먹을 때는 그런 갈등을 할 필요가 없다.

시원하고 옅은 맛의 육수 안에서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다. 


메밀 새싹은 메밀국수와 입안에서 부드럽게 잘 버무려진다.

비빔의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고소한 맛과 양념의 감칠맛이 계속 젓가락을 가게 만든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몸속으로 스며든 메밀들이

다시 재잘거리며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잠시지만 무더위도 이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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