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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ug 12. 2021

기억 속의 맛, 지금의 맛

감자볶음과 제육볶음

코로나로 인해 만나는 것도 조심스럽고 길을 나서는 것도 조심스럽다. 

일단 밖을 나서면 길이 나를 부르는 자연스러움에 따라가게 된다.

무더위가 절정을 향하지만, 그래도 맑고 푸른 하늘과 구름은 작은 위안이 된다. 

친구들과 그동안 보냈던 시간 속에서 주섬주섬 각자의 음악 레퍼토리를 

꺼내어 들으며 알차고 즐거운 시간이 지나간다. 

아침 겸 점심 식사할 곳을 물색하던 중 처음 가보는 음식점에 들렀다.

처음 가보는 곳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시장기에 더해진다. 


감자볶음은 간장 베이스와 고춧가루 베이스 그리고 말간 소금 베이스로 구분된다. 

어머님께서는 어느 하나가 질리지 않도록 골고루 해주셨다. 

감자는 살짝 덜 익혀 감자의 아삭함과 부드러운 질감을 동시에 맛볼 수 있게 해 주셨다. 

완전히 익혀 나온 감자볶음은 깊은 늪으로 빨려 들어가듯 물컹한 질감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고춧가루 베이스로 해주실 때에는 감자의 부드러운 맛이 

고춧가루의 날카로움을 제어하기 때문에 어린 입맛에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널찍한 덩어리로 썰어서 요리해주신 감자볶음도 맛있었지만, 

잘게 채 썰어해 주신 소금 베이스의 감자볶음도 여전히 입안에 머물던 그 맛을 기억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맛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오래된 세포들은 죽고 새로운 세포가 태어난다. 

맛의 기억은 입안과 나의 뇌에서 세포에서 세포로 옮겨지나 보다.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선명한 맛의 기억은 감자 맛과 함께 

그 당시의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선명한 인상과 

어머님의 손길에 대한 기억도 같이 끌어올렸다. 엄청난 힘이다. 

나는 왜 감자를 이토록 좋아할까? 

땅속에서 배어 나온 풋풋하고 신선한 흙내음의 옅은 느낌을 사랑해서일까?

아니면 한 여름의 고향 풍경을 자주 먹던 음식인 감자가 떠올리게 해서일까?


이 가게의 감자볶음은 어머님께서 해주신 감자볶음의 맛을 생각나게 한다.  

옅은 맛에서 짙은 맛으로, 겉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감자볶음의 질감에  

염치 불고하고 두 번을 더 달라고 말씀드렸다. 

세 번째 주시면서 볼멘소리를 하시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침 휴가라 근처에 물놀이를 가기로 되어 있었던 주인께서 

얼른 먹고 일어날줄 알고 점심 예약을 받았다고 하셔서....

주인장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경험적으로 

맛있는 음식은 더 달라고 하는 게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그 음식을 다시 먹을 기회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같은 음식을 주문하더라도 주인장의 컨디션이 달라져 있고

식재료 또한 완전히 다른 것이기에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겉절이 김치의 산뜻한 맛과 나물의 구수한 맛을 맛볼 무렵 된장국이 등장했다. 

호박과 두부와 된장이 잘 어우러져서 시원한 맛을 낸다. 

제육볶음은 돼지고기 앞다리나 뒷다리살을 주로 사용하고 

조금 괜찮다 싶은 곳은 목살을 재료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딱 보자마자 단번에 삼겹살을 재료로 만든 제육볶음이다.

그동안 먹었던 특히 대학시절에 값싸게 먹었던 수많은 제육볶음들이

잠깐 동안 떠올랐다. 때로는 끼니로 때로는 안주로 나를 행복하게 했던 나날들


양배추, 양파, 대파 등과 어우러진 삼겹살 제육볶음은 맛있었다.  

돼지 잡내가 전혀 없고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았다.  

상추쌈에 겉절이 김치와 제육, 양배추, 양파, 마늘을 한꺼번에

쌈 싸서 그 각각의 음식들이 제육볶음과 입안에서 정리정돈되어가는 느낌을 온전히 즐긴다. 


앞에 앉은 친구 둘이 논쟁이 벌어졌다. 이것은 돼지 뒷다리살이라고 주장했고 

나와 다른 친구는 삼겹살이라고 했다.

제육볶음에 삼겹살이 등장한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일단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결국 뒷다리 살이라고 주장한 친구가 내기에 져서 식사 후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선물해주었다. 

오늘날처럼 정교한 검색시스템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서로 갑론을박하면서 내기를 많이 했다. 

요즘은 검색해보면 금방 알 수 있으므로 오늘처럼 이렇게 커피내기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드문 케이스에 걸려 커피를 사준 친구에게 감사했다(~~). 


나는 오늘도 기억 속의 맛과 지금의 맛이 남긴 여운을 간간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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