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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ug 31. 2021

간장의 힘

편견을 벗어버리면 얻게 되는 즐거움

중국이 탄소중립을 실천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국내 석탄화력발전소가 가동을 줄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올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지난 몇 달 동안 맑은 공기를 선물해준 그 모든 것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오늘도 날씨가 끄무레하지만, 맑고 먼지가 없어서 상쾌하다.


런 끄무레한 날씨와 잘 어울리는 음식은 따뜻한 칼국수!



칼국수를 먹기 전 생선전을 주문한다.

이렇게 부드러운 생선전을 얼어있던 동태포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인데, 생태로 만들기에는 단가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또 그 신선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으리라. 집에서 생선전을 해 먹어 본 사람이라면 아마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생각일 것이다. 가치 있는 가게가 우리 주변에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여기 있을 것이다.

내가 혹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간직한 곳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게가 단단하게 버티기를 빌어본다.


음식을 먹을 때면 늘 맛에 있어서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자주 접했던 음식일지라도 조금만 더 세심하게 접근하면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맛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자주 먹으면서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런 경험들이 축적되어갈 때 더 깊은 세계로 점점 들어가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나는 평양냉면을 꼽는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음식인가 했었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상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의 시간 투자와 그 진미를 알고자 노력했다. 마침내 어느 순간 평양냉면의 그 깊고 오묘한 맛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맛을 음미하는 즐거움이 배가되었다.

더구나 평양냉면의 맛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어느 순간

잘 숙성된 동치미 국물이 어우러진 막국수나, 양지와 사골을 깊게 우려낸 국수 혹은 베트남 쌀국수의 국물과 맛이 유사한 지점까지 가게 되고 보니 일상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맛을 느낀다는 것이 대단히 신비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이 가게의 칼국수를 맛본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맛이 있었다!

오늘 내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바로 간장의 맛이다.

위가 약해 위염을 자주 앓아서 될 수 있으면 싱겁게 먹으려 노력하다 보니 간장을 멀리하게 되었다.

최근 마이크로 바이옴을 공부하며 음식의 발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간장에 대한 편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던 중이었다.


바로 그 간장에서 당장 무언가 묵직하면서도 아늑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마트에서 파는 간장은 아닌 것 같다.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가게 주인의 몫이지만

그 맛을 음미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먹는 것은 나의 몫이다. 이게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미리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여쭈어 보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한다.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옅게 생선전에 바른다.

간장의 깊은 맛이 그 생선전의 맛을 1층에서 3층 높이 정도로 올려 보냈다. 이쯤 되면 맛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표현하는 것 자체가 군더더기다. '그냥 맛있다, 간장의 맛이 더해져서 생선전이 맛있다' 정도에서 하산해야겠다.    


대신 간장을 조금 더 탐색해보기로 했다.  

사전에 간장은 콩으로 메주를 쑤어 소금물에 담근 뒤에

그 즙액을 달여서 만든 장이라고 한다.

간장은 짠맛·단맛·감칠맛 등이 복합된 독특한 맛과 함께 특유의 향을 지니고 있다. 담근 햇수가 1∼2년 정도 되는 묽은 간장은 국을 끓이는 데 쓰이고, 중간장은 찌개나 나물을 무치는 데 쓰이고, 담근 햇수가 5년 이상 되어 오래된 진간장은 달고 가무스름하여 약식(藥食)이나 전복초(全鰒炒)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간장은 부종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기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다 보면

오랫동안 묵혀 내려온 간장을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화면을 보게 된다.

김칫독에 오래 묵힌 맛처럼

간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묵힌 시간 동안 간장독 안에서 벌어졌을 미세한 변화를 상상한다.

그 미세하게 축적된 변화를 지금 입안으로 확인한다.

아 간장의 힘 앞에 조용히 숙연해진다.

나도 간장의 힘처럼 흘러온 시간 속에 묵혀져서 더 익어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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