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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6. 2022

재주 상회 고선영 대표

재주 상회와 사계 생활을 통해 로컬 혁신을 실천

#1. 안덕농협에서 사계 생활로의 변신


재주 상회는 사계리 마을 소유의 옛 농협 건물을 빌려 ‘사계 생활’이라는 마을 여행자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한다. 안덕농협은 마을 어르신들이 옛 농협 시절 마을의 커뮤니티 소통 기능을 담당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요청으로 마을 커뮤니티의 콘셉트를 유지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원형을 살려 디자인했다. 



우선, 들어가는 입구가 ATM 기계다. 사람들이 주문하는 데스크는 옛 농협의 창구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역 특산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도 금고 형태를 유지한 채 디자인했다. 공간 자체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사계 생활 1층에는 제주를 주제로 여러 작가들이 디자인해 만든 ‘굿즈’와, 재주 상회가 제주 농부·어부들과 협업해 만든 로컬 식품 가공품 등을 판매하기도 한다. 한동안 제주에 오면 찾았던 명주 한라산 소주병을 활용한 공예품이 확 눈에 들어온다. 제주 과자 생활도 눈에 들어오고(일행 중 한 분께서 같이 가신 모든 분들께 저 선물세트를 쏘셔서 추후 직장동료들과 다채롭고 흥미롭고 맛난 과자들을 나눠 먹었다.) 주변 가게들의 모습을 새롭게 디자인해서 엽서 크기로 홍보 테이블에 비치해놓은 모습도 대단히 창조적이고 흥미롭다. 


1층의 풍경만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역사회의 혁신을 위한 방법이 씨줄과 날줄처럼 잘 결합되어 있다. 지역사회에서 삶의 터전을 만들고 가꾸어온 사람들을 위한 플랫폼을 사계 생활이 제공하고 있다. 가계마다 예쁘게 디자인된 홍보물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여럿이 같이 오지 않았으면 가게마다 찬찬히 둘러보고 싶을 정도다. 거창한 센터를 짓거나 넓은 임대공간을 만들지 않더라도 있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방문하는 분들께 창조적으로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혁신의 빛나는 발자국들을 느껴보게 된다. 


#2. 콘텐츠 그룹 재주 상회

내가 무엇보다 주목한 점은 지역의 사람들이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일상의 가치>를 찾아내고 그것을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로컬 브랜드로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고 한다. 애초 잡지사 기자에서 지역 정착을 결심했던 고선영 대표가 지난 10년간 어떤 과정을 거쳤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반듯한 공간과 브랜드 및 잡지를 비롯한 결과물들을 볼 때 매우 지난한 경험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삼방산과 사계라는 자연조건과 평범한 제주 여느 시골마을과 같은 풍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데 로컬 크리에이터의 자부심과 긍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가 기술적인 혁신을 거듭하며 고속으로 성장하는 길을 택하고 규모의 경제를 선택하고 있다면 로컬은 도시가 담을 수 없는 다양한 가치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도시에서 겪는 피로감을 여기 와서 힐링하고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대단히 멋있어 보인다. 도시에도 사람이 살고 지역에도 사람이 산다. 도시와 지역이 서로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되기 위한 청사진을 고선영 대표의 발표를 통해 보는 듯했다. 


#3. <iiin> 잡지의 위력

고선영 대표의 발표를 듣고 1층에서 잡지를 다섯 권 구입했다. 제주의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하는 창구이자 사계 생활과 재주 상회의 다양한 콘텐츠를 알리고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잡지에는 세대 구분도 없고, 계층 구분도 없다. 오직 제주에 관한 스토리가 중심을 이룬다. 시리즈로 발굴하는 스토리들은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98년 제주를 처음 방문한 이래로 보이는 모습이 모두인 것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보이지 않는 가치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iiin> 잡지에는 제주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함과 동시에 이 스토리를 콘텐츠로 만들고, 그것을 상품이나 서비스 등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녹아있다. 그렇게 발굴한 로컬 푸드는 제주를 벗어나 다양한 지역으로 진출하고 있고 교두보가 바로 잡지다. 


강원도 지방 출신인 나는 어릴 적부터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삶의 질이 올라가는 공상들을 하면서 자랐다. 지역 특산물의 판매나 생태자원 관광상품을 활용하는 사례들도 조금씩 접했으나 도무지 답을 찾기 어렵다. 인구는 세월이 흐를수록 줄어들어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한 번쯤 꿈꾸어본다. 내가 나고 자란 지역으로 돌아가 이곳에서 배운 내용들을 사회적 혁신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하고. 마침 주변 지역에서 이런 지역혁신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변모시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였다. 


고선영 대표는 지난 10여 년간 재주 상회와 사계 생활 그리고 잡지 <iiin>을 통해 지역에서의 혁신을 이끌어왔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계 마을은 조용하지만 생동감이 넘쳤으며, 젊은 사람들이 일할 곳이 있었고 그 일할 곳은 지역주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었다. 앞으로의 모습이 더 기대된다. 제주에 가게 되면 그 사이에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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