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생태정원과 자연을 말하다
#1. 김봉찬 스타일
보통 정원을 만들고 생태계의 조화를 고민하는 분들은 말하는 스타일이나 행동이 조용조용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김봉찬 대표는 있는 그대로의 생태정원과 자연스러움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다. 힘주어 말을 하는 그의 메시지는 하나하나 깊이 새겨볼 대목들이 많았다.
"그의 정원은 하나의 생태계다.
물이 흐르고 미생물이 번식하며 곤충이 찾아든다.
갑작스러운 낯선 곳으로 옮겨진 식물도 이내 뿌리를 내리고 새 삶을 받아들인다."
1990년대 초반, 제주 여미지 식물원에서 일하던 김봉찬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수조 2개에 물을 받아 하나는 그대로 두고, 다른 하나는 식물을 심어 자연과 비슷한 환경을 조생 했다. 돌아서면 생기는 인공 연못의 물이끼를 벗겨내는 일에 고단해하던 찰나, 자연의 습지처럼 만들면 고인 물도 썩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솔깃했다. 1년 뒤 확인한 두 수조의 수질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연못 청소가 생태 정원에 관심을 갖게 한 셈이다.
그가 정원 카페 '베케'를 연 때는 2018년 6월이다. 2002년 포천 평강식물원, 2007년 제주 비오토피아, 2015년 봉화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 등의 프로젝트를 맡으며 생태 정원을 국내에 선보이는 동안, 자신의 정원에 대한 갈망을 옮겨놓은 것이다. 아버지의 귤밭을 정원으로 바꿔놓았다. 베케는 밭에서 나온 돌을 아무렇게나 쌓아두던 밭 경계의 돌무더기를 가리키는 제주도 말이다. 그는 또 조경 회사 '더 가든'도 운영하고 있다. 베케 정원 한편에 마련해둔 사무실이 그곳이다.
#2. 생태정원을 향한 관점
처음에는 그가 만들어놓은 이 정원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정원을 거닐며 하나씩 하나씩 설명해주는데 같이 간 일행분들이 많아서 띄엄띄엄 들었다. 그대로 그의 메시지를 옮겨놓을 수는 없었지만 중요한 몇 가지의 포인트는 길어 올릴 수 있었다.
우선, 인공적인 일본식 정원의 잘 정돈된 정원과는 달리 그의 정원은 될 수 있으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무엇을 심을까 어떤 꽃을 심을까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나무와 꽃들을 한가득 가둬놓게 된다. 내가 볼 때 이런 모습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그의 메시지에는 점점 더 말에 힘이 느껴진다. 습지와 이끼들이 정원 안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그의 생각의 영향 이리라.
정원 가운데 햇살이 내리비치는 곳에 벤치가 있었다. 정원이란 그 벤치에 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보아야 한다는 설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실제로 일행 중 한 명이 그 벤치에 앉아 있고 그 광경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정원과 그가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다. 그의 설명이 납득된다. 왜 나는 그동안 사람과 정원 혹은 사람과 나무와 꽃을 분리해서 생각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주차장이 보이는 정원 한 구석에서 주차장과 정원을 가르는 담을 설치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기억에 기대어 그의 메시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미칠 무렵 문득 제주
<사계 생활>에서 사 온 잡지를 펼치니 그의 메시지가 또렷하고 분명하게 들어온다.
#3. 제주 잡지 <iiin>에 실린 김봉찬의 메시지
대학에서 생태학을 전공했지만 생태정원은 낯선 개념이었다. 서늘한 고원에서 자라는 식물을 저지대의 정원에서 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습지 생태계는 어떻게 구성하는지, 책에서 읽은 것을 제주의 환경에 적용하며 더하고 뺄 것을 하나하나 확인했다고 한다.
포천 평강식물원을 조상하기 위해 머무는 동안, 밥을 먹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줄기가 겨울이 되며 붉어진 것을 발견했다.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져 수피의 색이 변한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유심히 관찰한 결과, 겨울철 수피의 색은 나무가 자라는 곳과 관계있었다. 초원과 숲의 경계에서 자라는 나무만 붉게 변하는데, 풀이 줄어들며 나무줄기라도 뜯어먹으려는 초식동물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독성을 가장한 것이었다.
그는 식물을 자신의 방식으로 분류했다. 잎과 줄기, 꽃과 씨앗 등 형태를 유심히 관찰하면 식물의 생태가 보였다. 가장 난제였던 디자인은 자연을 보고 터득했다. 안개가 자욱한 숲에 아침 햇살이 비칠 때, 폭포수가 장쾌하게 절벽을 흐를 때, 평범한 풍경에 갑자기 눈이 흩날릴 때, 직관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의 원리를 이해하고, 정원의 요소로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디자인이라 생각했다.
"이를테면 눈은 점이에요. 점이 찍히면 평면처럼 느껴지던 풍경을 입체적으로 인지하게 돼요. 꽃도 점입니다. 밋밋한 정원에 꽃을 심으면 공간감이 생기는 이유죠. 자연과 정원의 모든 요소를 치환해서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묻는 겁니다. 자연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어떤 나무, 어떤 꽃을 심을지는 부차적입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숲의 어둠, 잎 사이로 새어드는 빛을 어떻게 정원에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면 공부에 끝이 없어요. 행복한 일이죠."
매주 생태정원을 공부하는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시는 분들이 1박 2일로 이곳 제주를 찾아 세미나도 열고, 직접 정원을 비롯해 자연을 공부하는 그런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대단한 열정과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얘기하는 내내 묻어있어서 절로 숙연해졌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사람끼리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데, 사람들이 만드는 혁신 속에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만들어 가리란 생각을 해본다.
"정원 만드는 일은 이주한 생명들이 낯선 서식처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작업이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쫓겨난 생명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어떻게 해야 정원에 생명이 들 것인지 고민해야 도시가 더 좋아질 것이다." - 김봉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