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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Nov 22. 2021

제주가 감춰둔 맛 - 보말 국수

제동목장 억새 풍경과 함께한 맛

제주도 동쪽에 있는 목장이라고 해서 제동목장이라고 한다. 450만규모라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되지 않는데 여의도 실제 면적이 90만 평이라고 하니 여의도의 다섯 배다. 제주도 크기를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우를 4천 두 정도 길렀다고 한다. 목장 소유 기업인 대한항공의 기내식에 대부분 쓰인다고 했다. 코로나 이후 지금은 1400두 정도로 많이 축소되었다고 한다. 국제선 운행이 대부분 중단된 탓이라고 한다.

해발 350-400미터에 자리 잡은 제동목장. 그 안에 정석비행장이 있다. 퇴역한 비행기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훈련을 하지 않지만 평상시에는 대한항공 직원들과 한국항공대학 학생들이 비행훈련을 한다고 했다. 설명을 하시는 임종도 목장장께서는 제주에 내려오신 지 17년이 되었다고 하신다. 앞으로도 제주에 눌러 살 계획이라고 하신다.


억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풍경 좋은 곳으로 안내하신다. 억새와 나무로 채워진 들판 위로 비현실적인 구름들이 쉽게 쉬지 못하게 만든다.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어디를 찍어도 모두 그림이 된다. 핀란드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구름들이 생각났다. 그런데 잊어도 될만하다. 변화무쌍하면서도 멋진 풍광을 보여주는 제주는 존재 자체로 힐링이 된다고 생각한다.

제주 중산간 길은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곳이다. 갈 때마다 언제나 조용하게 산책하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 곳이다. 나무와 풀들도 뭍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억새밭 한가운데에 있는데 같이 온 일행의 존재를 잠시 잊어도 좋을 만큼 잠깐 동안이지만 깊은 명상에 도달하게 한다. 볼에 와닿는 바람과 나무를 스치는 소리와 햇빛과 구름들이 만들어낸 풍광 속에서 나는 잠시지만 아늑한 기분을 느낀다.


서서히 배가 고프다. 보말 국수 가게는 코로나가 무색할 만큼 사람들이 많다. 방역수칙은 제주 어디에서나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고 여기도 마찬가지다.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복판에 의미심장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왜 살까? 먹는 거, 즐기는 거, 좋은 집 사는 거.... 잠시 깊이 생각하려다가 벽판의 이미지대로 그냥 흘려보냈다. 어떤 메시지를 머리에 담고 이리저리 굴려보던 때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가슴에 잠시 담아두었다가 덜어낸다. 그렇게 내 가슴을 담금질하면서 나는 말로 닿을 수 없는 인생의 깊이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고 착각한다.

보말은 바다 고둥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방언은 또 무엇인가? 지역에서 쓰는 말이라고 표현하면 표준어를 사용하는 곳의 계급의식이 깔려있는 것처럼 느껴져 좀 꺼림칙하다. 그냥 제주말이라고 하거나 아예 제주에서는 그냥 보말이다. 꼭 거기에 방언이라는 낙인을 붙이지 않아도 좋지 않은가? 지방 출신인 내가 수도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경계를 허물고 서로 주고받는 그런 느낌이 언어라고 생각한다.

녹차를 섞은 면은 건강한 맛을 선사할 것만 같다. 보말의 강렬한 존재감 그리고 보말을 호위하고 있는 전복과 홍합도 잘 어우러진다. 호박과 당근 그리고 부추 등은 적당히 섞여 색감과 장식적인 느낌마저 준다. 전날 진하게 한잔 한 탓일까. 국물은 내장을 포근하고 아늑하게 감싸준다. 면보다는 국물에 더 가까이 밀착한다. 감질맛과 시원함 그리고 따뜻하게 감싸는 기운 속에서 내 몸은 힐링하고 있다.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리라.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교감하기도 하고 같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만들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음식은 하나의 또 다른 소통수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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