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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01. 2021

겨울 무 예찬

산악지대로 둘러싼 고향집에서 맞는 겨울은 매서운 칼바람과 늘 마주치는 계절이다. 창호지 문을 열면 곧바로 찬바람이 훅 들어와 애써 연탄난로로 덥혀 놓았던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싸늘해진다. TV에서는 배우 김영철이 손기정 역할연기로 마라톤에 대한 붐을 일으킬 무렵이었다. 밖으로 나가신 아버님은 꽁꽁 언 땅을 괭이로 캐서 지난가을 묻어두었던 무를 두 개 뽑아 오셨다. 언 땅 안에서 잔뜩 머금고 있던 아삭한 식감과 수분과 단맛을 무는 기꺼이 내게 선물로 주었다. 위풍이 도는 추운 방 안에서 따끈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며 먹던 무가 생각난다. 

나는 무를 너무 좋아한다. 어머님이 해주시던 뭇국은 거의 예술의 경지였다. 무를 채 썰어 기름에 볶은 뒤 멸치 우려낸 물을 넣어 끓인 뭇국은 여러 그릇을 먹어도 그 깊고 단맛이 반감되지 않았다. 특히 차가운 겨울바람이 매서운 날씨에 뭇국은 그 자체로 삶에 큰 위로가 되었다. 먹음직스럽게 붉은 빛깔이 도는 무생채는 언제 먹어도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선사한다. 무 생채만 있어도 밥에 비벼 먹을 수도 있고, 그냥 밥 없이 먹어도 맛있다. 


무는 천연소화제라 불릴 만큼 소화 효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껍질 부분에 많아 되도록 껍질째 섭취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C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감기, 피로 해소, 면역력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해독, 골다공증, 항암효과 다이어트 등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속이 쓰리거나 숙취에 시달릴 때 먹으면 좋다. 속이 불편할 때 무만큼 좋은 생약이 없다. 전분을 분해하는 아밀라아제, 무의 뿌리에 많은 디아스타제, 단백질을 분해하는 프로 타아제, 지방을 분해하는 리파아제 등이 있다. 이런 소화효소들이 쾌변을 하도록 도와준다. 무즙을 섭취하면 놀랍도록 배변량을 증가시킨다. 대장의 연동운동을 도와주기 때문에 대장암 예방에도 좋다. 혈당의 급상승을 막아주어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무를 먹으면 대개 트림을 하게 되는데 그만큼 소화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다. (푸드 경제신문)


얼마 전 제주 출장을 다녀오면서 무리를 해서 그런지 속이 너무 불편했다. 곧장 동네 가게로 향했다. 서비스로 주시는 소고기 뭇국을 세 그릇을 청해 먹었다. 서비스로 주시는 반찬을 계속 달라고 하기 민망했지만, 본능적으로 뭇국을 먹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무가 가진 소화촉진 기능을 들여다보기 전에 본능적으로 뭇국을 향했고 내 속은 곧바로 진정되기 시작했다. 신기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음식이 곧 약이다.  


마트에 들러 다발 무를 샀다.  낱개로 파는 무가 3천 원인데 다섯 개 무가 묶인 다발무가 7천 원. 당연히 다발무를 샀다. 아내에게 어묵 뭇국을 끓여달라고 했다. 맑은 불투명한 빛깔의 무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추억을 먹는 것과 같다. 어머님께서 겨울날 해주시던 어묵탕에도 무가 반드시 포함되었다. 눈밭을 뛰어다니다가 들어와 호호 불며 먹던 어묵탕. 오늘 나는 무를 예찬하며 예전 일을 회상하며 무와 어묵을 번갈아 먹는다. 나의 위와 장은 편안한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간다. 겨울밤도 점점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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