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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an 22. 2022

인생은 거기서 고기다 !

고기와 나와의 관계는 가까이할 수 없는 사이였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모님과 조금 더 큰 도시로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아마도 순대와 간을 시키셨는데 그 간 한 점을 먹고는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워낙 입이 짧아 냉면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선명한 기억이 있던 터라 이 사건은 내게 고기에 대한 트라우마를 만들고 말았다. 부모님은 장남인 나를 위해 쇠고기, 삼겹살, 보쌈 등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한번 형성된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고기를 포기하는 대신 어머님은 두부와 산나물, 멸치무침, 고등어 등으로 부족한 내 단백질을 보충해주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부모가 되고 보니 어머님의 노력에 깊이 머리가 숙여진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숙집을 잘못 만나, 3개월 만에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 어머님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아무런 음식도 준비하지 않으신 채 치킨 한 마리를 내미셨다. 내가 다시 고기와 조우하게 된 그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치킨은 시장기만 채워준 것이 아니라, 그동안 잘 못 먹어 생긴 허기를 채워줬다. 그 이후 신기하게도 소고기도 먹고 돼지고기도 먹고 닭고기도 먹게 되었다. 물론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족발이나 보쌈 수육같이 쪄서 먹는 돼지고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 가게의 간판을 본 게 7년 전인데 한 번도 들를 생각을 못했다. 정육점 식당이 고기만 전문으로 하는 가게에 비해 떨어질 거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주문하자마자 주인장께서 곧바로 고기를 썰어 내놓는다. 오겹살은 육질이 살아있다. 목살에는 적당한 지방과 짙은 색깔의 살코기 부위가 한눈에 봐도 신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돼지고기는 생고기로 구워야 맛있는데 생고기를 보는 노하우가 그동안 축적되어 있어서일까? 기대된다. 불판은 적당히 가열해야 한다. 그래야 고기가 눌어붙지 않고 기름도 잘 빠지고 고기가 노릇노릇 잘 구워진다. 


기름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위에 하얀 기름종이를 올려주는 센스도 이 가게만의 노하우 이리라. 실제로 팔이나 손등에 기름이 튀면 생각보다 기분이 좋지 않기에 그 배려도 고맙게 생각된다. 고기가 익는 동안 마늘과 양파를 구워 막걸리를 한잔 한다. 구운 마늘은 촉촉한 식감과 마늘의 날 것이 가진 향기를 동시에 먹을 수 있다. 그 자체로 좋은 술안주다. 양파 역시 단단한 식감이 불판 위에서 늘어지면서 촉촉하고 단 즙을 내놓는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기를 뒤집고는 한 점씩 가위로 잘라낸다. 가위를 댈 때마다 육즙이 허공으로 튕겨나갈 정도로 고기는 신선하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족들과 고기 식사를 하면서 철칙처럼 지키는 것이 있다. 절대 고기를 태우지 않는다. 혹시나 태운 부위가 발생하면 가위로 잘 잘라낸다. 밖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나와 달리 식구들은 좋은 것들을 접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생긴 부채의식으로 인해하게 된 습관인데 가족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다. 


상추쌈에 소스를 듬뿍 적시고 풋고추 한 점, 마늘과 양파 한 점씩, 잘 익은 콩나물과 김치를 올리고 그 위에 냉면 한 젓가락을 올려놓으면 쌈이 완성된다. 한 쌈의 고기를 먹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먹을 때는 오직 음식에만 집중한다. 그 한 점 안에 숨어있는 일상의 황금 같은 가치를 발견한다. 가족들과 한 끼니 나누면서 음식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이 시공간에 대해. 지금 이 순간은 아마도 오래전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맛있는 한 끼니와 한잔의 술을 나눠먹던 공간과 유사하다. 시간이 흐르면 즐거웠던 추억만 남는다. 그 추억의 매개고리 역할을 음식이 아니 지금 고기 한 점이 하고 있는 것이다. 

항정살은 꽃등심처럼 기름이 촘촘히 박혀있어서 느끼할 수 있다. 그런데 살과 기름의 오묘한 조합으로 인해 고소함을 맛보고 난 후 나는 항정살의 팬이 되었다. 처음에 오겹살과 목살을 먹으면서도 연신 신경은 항정살에 가 있었다. 둘이 오면 주문할 수 없는 메뉴다. 오늘은 막내딸이 합류했기 때문에 주문한다. 빛깔 고운 살과 기름의 조합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마치 잘 다듬어진 대리석에 붉은 물감을 칠해놓은 것 같은 배열의 미감이 느껴진다. 잘 익은 항정살을 오직 소스에 찍어 바로 먹는다. 2001년 홍대 근처 소금구이 집에서 맛보았던 고기 맛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항정살을 조금 남긴 뒤, 볶음밥을 주문한다. 남은 고기를 잘게 썰어 볶음밥과 같이 버무린다. 술안주는 마늘과 앙파에서, 오겹살과 목살 쌈으로, 다시 항정살이 섞인 볶음밥으로 진화한다. 

무리하게도 볶음밥을 포장해달라고 주문한다. 9시에 마쳐야 하는데 술이 약간 아쉬워서 그랬다. 집으로 돌아와 수원 못골 종합시장에서 사 온 찐 문어를 익힌 뒤 잘게 썰어 볶음밥 위에 올려놓으니 육군과 해군의 완벽한 조화로다. 막걸리리 안주로는 최상의 조합이다. 겨울밤은 더욱 깊어가고 음식에 대한 나의 애착도 점점 더 깊어간다. 



갑자기 인천 신기시장에서 찍은 사진이 생각났다. 여러 곳을 다니면서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간판이 있을 때마다 무릎을 치면서 사진을 찍어두는데 이곳의 문구는 너무 재미있고 재기 발랄하다. 가끔은 거기서 고기를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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