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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Feb 02. 2022

설날 차례를 올리면서

설날이 다가오면 두근두근, 세뱃돈에 온 신경을 집중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세배를 드리는 게 어렴풋이 어떤 뜻인지는 가물가물하다. 차례를 지내는 것은 세배를 드리기 전에 거쳐야 할 지루한 통과의례로 여겼었다. 엄격한 아버님께서도 설날만큼은 환한 표정으로 세배를 받고 덕담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한복 주머니에서 짠 하고 등장하는 세뱃돈을 받았다. 세뱃돈으로 평소 갖고 싶던 장난감이나 먹고 싶은 것을 사며 1년에 딱 한번 나만의 축제를 즐겼었다. 가끔 아버님을 따라 이웃 어른들께 세배 데리러 가서도 세뱃돈을 받을 때는 즐겁기까지 했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향 집을 찾아뵙고 차례를 지냈다. 차례를 지내는 일도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예를 갖춰 모시던 의미는 나란 존재의 근본을 생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살아온 날들에 대해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계획과 각오를 다지는 시간으로 여겼다. 세배를 드리며, 젊은 날 고된 노동과 노력 속에서 한 가족을 일구어 오신 부모님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설날을 설날답게 만드는 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며 먹는 떡국 한 그릇!! 그 한 그릇 속에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올 한 해는 새로운 일들이 펼쳐질 거 같다.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차에 설날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은 올 한 해 뭔가 새로운 좋은 징조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늦잠을 잔 터라 아내가 제사상 상차림을 다 만들고 겨우 일어나 지방을 쓰면서 아버님을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6년이 지났다 코르나로 동생들은 오지 못하고 줌으로 온라인 중개를 하면서 차례를 지내는 풍경이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 3년째 되고 보니 자연스럽다. 오히려 시간을 내서 서로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멀리서나마 서로 마음으로 주고받으면 된다. 


통과의례는 오래도록 깊게 생각한 주제다. 사람들이 살면서 거쳐야 할 의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점차 줄어들어가고 있으니 설과 추석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소중하다. 조상을 모심으로써 우리가 어떤 복을 받는다는 유치하고도 야만적인 생각들을 걷어낸지는 오래되었다. 차례를 지내며 가족공동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헌신했던 부모님의 노고 속에는 거칠고 힘든 시간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부모님의 부모님이 겪었을 참담한 순간과 빛나는 순간도 상상해 보게 된다. 내 삶의 근간을 확인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 동안 내가 소속된 가족공동체 속에서 나는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된다. 의미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유하려고 소통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첫째와 둘째에게 올해 마지막으로 세뱃돈을 줬다. 세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풍속인가? 서로 건강과 안녕과 행복과 작고 소소한 성공을 기원한다. 말을 줄이고, 가족공동체의 소속 구성원들로부터 덕담을 받는 데 집중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내년이면 첫째와 둘째는 세뱃돈을 졸업하고 막내에게 만 세뱃돈을 준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홀가분 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떡국 한 그릇을 각자의 자리 앞에 놓고, 사소한 얘기와 초하룻날의 덕담을 주고받는다.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음력이 훨씬 내 몸과 가깝다. 그 그릇 안에 비치는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과 나누었던 수많은 떡국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태어나면 화살과 같이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곧장 흐른다. 추억의 순간, 지금 추억을 바로 만들어내는 지금 이 순간들을 하나씩 정지화면으로 간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순간 속에서 의미를 길어 올려 가슴 한편에 간직하다가 어렵고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도록. 떡국 한 그릇을 먹고 나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편안하다.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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