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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07. 2022

바탐이 준 선물

2008년 인도네시아 바탐


@1. 내가 살았던 1970년대를 닮은 바탐의 첫인상 


싱가포르 출장 일정의 백미는 바탐에서의 1박 2일이었다. 싱가포르는 대부분의 방문지가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지만 왠지 이국적인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도시를 방문한 것과 같이 큰 감흥이 없었다. 관광지로 돌아본 곳들도 아주 새로운 맛은 없었다. 다만, 음식으로는 빨간 게와 깡꿍이라고 하는 나물 음식이 굉장히 큰 인상을 주었다. 독특한 양념을 한 게와 나물은 처음 먹어보았는데 아주 맛있었다. 그렇게 덤덤한 3일이 지나고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를 향했다. 일행 중 한 분이 인도네시아 정치학을 전공했었기에 언어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도 큰 위안거리였다. 불과 배로 1시간 만에 인도네시아 바탐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는 가본 적이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도네시아 휴양지 하면 빈탄을 떠올리게 된다. 다음날 스노클링 계획이 있어서, 내심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물과 바다는 무섭지만, 맑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헤엄을 칠 수 있다는 설렘이 공존했다. 도착하자마자 실망감이 확 밀려왔다. 여권 심사를 하는 곳은 초라한 목조 건물이었고 심사라고 해봐야 여권을 보고 그냥 도장을 꽝 찍으면 그만이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거리에서 실망감은 더 커졌다. 도로는 낡아서 덜컹거렸으며,  빛바랜 선거벽보는 지금이 선거철인지 아니면 철 지난 벽보를 붙여놓은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거리 풍경은 내가 자랐던 광산도시의 70년대 80년대 풍경과 비슷했다.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고 나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므로 평정심을 갖게 된다. 


@2. 놀라운 모습과 순박한 사람들


호텔에 도착하고 보니, 호텔 주변에 큰 건물이 하나도 없다. 낮은 집들이 즐비한 주택가다. 나의 단점 중 하나는 실망을 하게 되면 그게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는 거다. 같이 안내했던 후배님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게 되어 황급히 주제를 내일 하게 될 스노클링으로 돌렸다. 실망스러운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손수레 행렬이 반원을 그리며 넓은 광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수십 개의 손수레가 즐비하고 각기 먹을 것을 팔고 있었다. 

5일장에 온 것처럼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차 올랐다. 나는 확실히 먹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 틀림없다. 이곳이 바로 푸드 코트라고 한다. 큰 건물에 번듯한 가게들이 즐비했던 싱가포르의 푸드코트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제대로 된 푸드코트를 만났다. 우리 일행들이 점찍은 곳은 홍게 요리와 깡꿍을 파는 곳이었다. 엄청 저렴한 가격에 음식의 질은 싱가포르와 비슷했다. 기네스 맥주와 게요리, 깡꿍을 네 명이 제대로 먹었다. 실컷 먹었는데 가격은 8만 원이었다. 가치는 가격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깡꿍은 모닝글로리, 공심채라고 알게 되었는데,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다. 


어느 정도 배고픔이 가시고 인도네시아 바탐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인상과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순박하고 평온하며 친절하고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내가 편안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원래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인도네시아 말을 할 줄 아는 후배님과 말을 건네는 인상을 봐도 순박하고 또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착해 보였다. 우리가 내미는 돈을 엄청 소중하게 받았던 걸로 기억이 난다. 


길을 나섰는데 바로 숙소로 발길을 돌리기는 아쉬웠다. 비가 조금씩 내렸다. 이 정도의 비라면 내일 물이 흐려서 스노클링은 어렵다고 한다. 그럼, 일찍 들어갈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근처에 있는 허름한 카페로 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도네시아 아가씨들과 새벽 4시가 넘도록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들고 웃고 마시고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그렇게 보냈다. 나는 떠듬떠듬한 영어로 그리고 누구는 인도네시아 말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아주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매상을 올리겠다고 맥주를 들이마시지도 않았고 같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3. 삶의 가치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받다 


바탐 여행으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기준은 정말 정확한가?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GDP와 같은 수치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자신이 느끼는 삶에 대한 만족은 물질적 환경 너머 사람 인심 환경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내가 자란 70년대를 돌아보았다. 계절별 옷은 한 두벌 밖에 없었고 어느 때는 쉰 밥을 어머님께서 프라이팬에 볶고 설탕을 뿌려 주셨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계란 프라이 올린 도시락을 가끔 열어보고 환호성을 질렀고 눈 내린 동네를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순박함의 이데아가 있다면 인도네시아에서 출발했으리라. 맑고 밝은 그들의 표정과 인상 어디에서도 나는 후진국의 비참한 삶을 발견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그들 삶의 한 단면이었을 것이다. 그들도 힘든 시간들을 보냈고 보낼 것이다. 그러나, 표정과 인상에서 그들 삶의 만족감을 숨길 수는 없으리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과 삶의 가치를 선물로 받아 들고 공항으로 향한다. 비행기 타는 일은 늘 힘겹지만, 아름다운 추억이 내 목덜미를 간질여주어서 오는 내내 불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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