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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Oct 07. 2022

프랑크푸르트 동네 한 바퀴

여행이 남긴 추억들

1. 프랑크푸르트의 마지막 밤

유럽의 여름밤은 호텔에서 머물기에 너무 아깝다. 신선하고 시원한 바람이 걸음을 재촉한다. 오래된 주택과 상가들이 이어진 구시가지가 걷기에는 편할 뿐만 아니라 안전하다. 신시가지는 밝고 화려한 조명들 사이로 어두운 골목이 높은 빌딩과 어우러져 있어 왠지 걷기에 몸이 위축된다. 바닥에 깔린 돌을 하나씩 밟으며 걷는 기쁨은 먼 거리가 주는 아득함을 상쇄하고 남는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 위 난간 전망대에서 사진 찍는 걸로 대충 사전 답사를 마치기로 한다. 다음날 이벤트를 위해!


갈증과 시장기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마침 숙소 근처에 맥주공장이 있어서 이 근처 가게들에서 팔겠거니 하고 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쓰는 표현 <Do you have any local draft beer?>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그렇게 말을 하면 재미있다. 독일 하면 맥주의 이미지가 연상된다. 맥주 브랜드도 많거니와 인지도도 높기 때문이리라. 나는 국내에서 수입맥주 중 독일 맥주는 잘 먹지 않는다. 진하고 거친 맛 때문에. 이 가게에서 마시는 생맥주는 무게감은 비슷하지만 부드러운 거품이 선사하는 첫맛과 맑은 뒷맛이 좋다.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물로 만든 술을 마시는 것이 최고의 맛 아니겠는가? 여름밤은 깊어가고 맥주잔에 취기도 오른다. 주택가 동네라서 그런지 조용하고 한가롭다.   


2. 대열을 벗어나다


해외로 단체 출장을 갔을 때 공식일정중 일행과 떨어져 본 적은 없다. 다른 사람들 일정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침에 버스로 세 시간 남짓 이동해서 한 시간 정도 구경하고 식사하고 공항으로 향한다는 일정을 안내받고 잠시 고민했다. 어차피 오늘 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으니 이탈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일도 없고, 세 시간 남짓 차를 타고 갈 거면 차라리 이 동네를 걸어서 한 바퀴 도는 것이 더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 어느새 아홉 명이 되었다. 주저 없이 시내로 향한다.

3. 벼룩시장 탐방 - 오래된 것들과의 결별 혹은 새로운 주인을 만남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 중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교환하거나 팔고 있었다. 오랫동안 물건과 같이 살다가 작별하기로 결심해서 내놓은 물건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그 사람에게 유용한 물건이 될 것이다. 생각보다 볼 것들이 많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중에 눈에 띈 물건은 나무를 깎아 만든 물병인데 살짝 금이 가있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태도 괜찮고 뭔가 분위기 있어 보인다. 돌려놓으면 집안 장식으로 잘 어울릴 것 같다. 5유로를 깎아 15유로에 샀다. 서로 횡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목각 인형을 네 가지 샀다. 짐을 지고 있는 부부의 모습과 인장을 바라보는 신사와 길가다 땀을 닦는 나그네 이렇게 네 가지를 싸게 샀다. 비행기에 오르고 내리는 일에 번거롭겠다 싶었지만 이전에도 나막신과 풍차 달린 인형들을 사다 집에 진열하니 보기에 좋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주저 없이 샀다.



4. 스트리트 뮤지션을 만나다


어제 넘어갔던 다리를 거너 광장으로 향한다. 유럽은 어느 곳이나 이렇게 넓게 트인 광장이 있다. 광장에 깔려있는 돌들을 밟고 어기 저기 서성거리다 스트리트 뮤지션을 만났다. 한 사람은 드럼을 신나는 비트로 두드리고 또 한 사람은 솥뚜껑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 행 드럼이라는 타악기인데 드럼과 같은 타악기라도 음이 있다. 두드리고 약간 비비기도 하면서 드럼과 잘 어울린다. 연주자들의 흥이 바로 전달되어 발바닥이 들썩거린다. 이 조합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뮤지션들의 다양한 조합을 넘어서고 있다. 잘 어우러지는 소리에 매료되어 일행들과의 약속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일행들을 놓쳐 여러 사람 고생하게 했는데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때와 다르다면 그때는 작품들 사진 찍느라 놓쳤고 오늘은 음악을 듣느라 놓쳤다. 20유로를 주고 음반을 한 장 샀다. 약간 비싼 듯해도 여행에서 사놓은 음반들은 두고두고 추억을 꺼내 주는 역할을 하기에 아낄 필요가 없지만 물건을 사는 데는 약간의 고민이 따른다.


광장 한편에서 사람들 구경하며 차를 마신다. 차만 마시기에는 시간이 아까워 장소를 옮겨 햇살 비치고 사람들이 더 많이 오가는 가게 앞에 자리를 잡는다.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담아 한잔 마신다. 이 아홉 명의 멤버와의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그 기억을 더듬고자 국내에서도 두 번이나 만났다.


5. 추억을 부르는 물건들  간직하기


퇴근 후 혹은 휴일 늦게 잠이 깨어 벼룩시장에서 사 온 물건들을 구경한다. 살 때는 갈등이 있었지만 이렇게 집에 놓고 보니 보물 같다. 여행 다니며 사람들과 쌓은 추억들, 걸었던 거리들, 스쳐 지나간 풍경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는데 사진도 좋지만, 물건만 한 것이 없다. 계속 기억을 꺼내 주는 역할을 하니 더더욱 보물이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나의 팍팍한 일상을 잠시 위로한다. 버려지지 않고 내게서 소중한 물건으로 쓰여서 좋다. 어느 동네 건 벼룩시장을 꼭 들려보리라. 거기 내가 소중히 간직할만한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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