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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Dec 27. 2022

2015 암스테르담 - 잔세스캉스 자전거 왕복

@1. 남은 12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시간은 오후 10시. 체크 아웃을 하고 나니 12시간 정도 남았다. 암스테르담 시내를 구경하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내가 먼저 주의를 끌었다. 호텔에 비치된 자전거를 대여해서 풍 차 마을로 유명한 Zaanse Schans까지 다녀오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호텔에 비치된 자전거가 묵직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시간을 잘 계산해야 하기에 내가 앞장섰다. MTB를 타고 하루 140km를 두세 번 완주했던 터라 내가 잘 이끌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10km 정도까지는 다들 무난히 잘 따라왔다. 조금씩 쉬면서 다시 출발했다. 


@2. 가는 여정


시원하게 쭉 뻗은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니 낯선 길을 가는 즐거움이 배가 된다. 자전거가 무거운 게 마음에도 걸렸지만 영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어르신과 여인네들 모두 쌩쌩 달리며 우리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시내에서부터 잘 정리된 자전거 도로를 보니 너무 부럽다. 서울 시내에서는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 개천 길이다. 


자전거 전용도로라고 대국민 사기극으로 만들어놓은 길은 위험천만해서 자전거가 다니지 않고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그 길을 이용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지만, 너무너무 부럽다. 2006년부터 3년 동안 MTB를 타고 로드를 달리는 동안 내내 불안했다.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차도 옆으로 달리는 길도 무서웠지만 강이 보이는 고가를 달릴 때는 정말 공포스러웠다. 터널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곳은 그냥 자전거 천국이다. 한참을 달리는데 나도 일행도 걱정이 앞선다. 아직 목표지점까지는 절반밖에 가지 못했는데 벌써 이렇게 힘들면 올 때는 어떻게 할 건지.... 서로 말은 안 해도 표정을 보면 안다. 내가 애써 안심시키며 앞으로 나간다. 


@3. 풍차마을에 도착


2012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이곳 풍차마을까지 기차로 왔던 곳을 자전거로 오니 그때와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었고 주변의 풍경들도 손안에 잡힐 만큼 가까이 있어서 상쾌했다. 일행들에게도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풍차마을 전체를 자전거로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 풍차마을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집 모양이 악기 모양을 닮았다. 바이올린을 떠올리게 한다. 색깔은 하나 같이 화려하다. 한동안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원색과 집 형태가 예술적이다. 


 '잔세 스칸스(Zaanse Schans)'에는 18세기까지 1000여 개의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풍차를 돌려 만들어진 동력은 바닷물을 퍼내는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식료품·비료 등 다양한 생필품을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전 세계에 수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다를 막아 간척한 땅이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서, 이를 목초지로 활용해 소를 방목했고, 그로 인해 네덜란드인은 치즈를 즐겨 먹었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나막신 제조공장. 네덜란드의 기계공업은 18세기부터 발달되었다고 했다. 나막신을 깎는 기계 앞에 쭈그려 앉아 신발이 제작되는 과정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기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대단히 흥미롭다. 프로그램된 모양으로 나무를 밀고 나가는 기계의 움직임이 신기하다. 해면보다 낮은 지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땅에 물기가 많아 질척거리는 길에 적응하기 위해 나막신은 필수였다고 했다. 다양한 나막신이 진열되어 있다. 무겁고 불편해 보이는 외형과 달리, 막상 신어보면 매우 발이 편한데, 포플러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높은 굽의 디자인으로 발을 보호할 뿐 아니라 수분을 흡수하고 보온성까지 뛰어나다. 


만들다가 잘못 만들어지거나 모양이 약간 엉성한 것들을 구석에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었다. 큰 거나 작은 것 모두 하나에 1유로. 아주 작고 귀여운 것과 큰 것 두 개를 샀다. 집에 전시해놓을 요량으로 샀는데 지금도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그 곡선은 수천 km의 간극을 메우고 네덜란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물건의 가치는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어서 치즈를 비롯해 먹을 것들을 진열해놓은 곳으로 갔다. 맛볼 수 있게 작은 조각들을 썰어놓아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한국에서 먹던 치즈와는 냄새와 맛이 다르다. 아이들에게 줄 과자며 선물을 다들 조금씩 샀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갈 때 그 무게와 걸리적 거림으로 인해 고통을 감당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4.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오는 길


저녁 비행기를 타려면 6시 전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야 한다. 늦지 않게 출발했는데 다들 힘들어한다. 겨우 왕복 40km인데 이렇게 힘들다니!! 후배님들이 힘들어하니 내색을 할 수도 없고, 슬슬 초조한 마음이 든다.  어느 순간 자전거를 버리고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전거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득 대학3학년 되던 어느 날 춘천으로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가평에서 항복하고 기차로 돌아온 기억이 떠오른다. 힘든 내색을 하면 같이 퍼질 것 같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독려한다. 


그래도 쉬는 동안 장난기가 발동해서 농담을 주고받는다. 때로 힘든 일은 힘은 들지만, 힘듦을 통해 무언가 얻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저기 출발했던 호텔이 시야에 들어오니 안도하게 된다. 자전거를 세우면서 후배님들이 하나같이 내게 말을 건넨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고. 해외여행을 여러 번 다녔지만 여행 중 자전거 타는 경험은 나도 처음이다. 나 역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요즘도 가끔 전화통화를 하면 그때의 추억이 너무 그립다고 들 한다. 나도 그립다. 강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풍차마을의 풍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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