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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l 09. 2023

매력 넘치는 도시 Tallinn #1

@1. 탈린으로 가는 배


헬싱키에서 탈린으로 가는 배를 탔다. 10여 년 전 오전 일정으로 탈린을 다녀왔을 때만 해도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에 여름 반나절동안 탈린의 구도심 곳곳의 인상을 촘촘히 기억 속에 넣어뒀다. 탈린은 내가 가본 도시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 하나다. 한자동맹의 중심지인 탈린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협상이 진행되었던 건물이었다. 오래된 의자에 앉아 잠시 테이블을 보며 그 옛날 무역상들이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당시에는 여름이었으나, 지금은 겨울 바다를 조용히 건넌다.


1년 내내 운행하기 때문에 바닷물이 얼어있는 경우에 얼음을 깰 수 있는 쇄빙기능을 갖춘 배다. 이 배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있는 자치섬에 적을 두고 있어서 배안의 쇼핑몰의 물건들은 세금이 면제된다. 핀란드 사람들이 담배나 술을 사기 위해 배를 탄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고, 싼 곳을 향해 움직이는 인간의 경제적인 행동의 보편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선상의 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좋아하는 맥주이지만 운행시간이 길지 않은 배 위에서 굳이 먹어야 하나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쓴다. Ketherine Jenkins의 감미로운 목소리, <Schindler’s List>는 사람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잔잔한 발트해를 지나가면서 여러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2. Confident와 사람의 운명에 관하여


오래전 탈린에 가서 반나절 함께 산책했던,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교수님의 얼굴이 떠올라 울컥했다. 재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허망하고 헛헛한 마음이 포말로 흩어진다. 연배도 한 살 차이밖에 나지 않고 아이들도 똑같이 세 자녀를 두었고, 밝고 멋진 에너지를 가진 분이었다. 특히 교수님의 전공분야인 행복한 노년에 관해 엄청난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행복한 노년을 얘기할 때 주류 신문들은 몇십억을 축적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었을 때 삶의 올바른 가치가 돈에 있지 않음을 명확하게 던져주셨다. 


교수님은 <Confident>라는 개념을 내게 들려주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은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나의 일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 바로 <Confident>라고. 그래서 그 뒤부터 나는 어떤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살펴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 역시 누군가가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살펴보게 되었다. 우리가 70세 정도 되어 자식들도 다 키우고 사회적 의무도 다한 뒤에 유럽으로 같이 여행을 온다면 멋지게 댄스를 추자고 약속하기도 했었다. 부디 평안과 안식 속에 영면하시길 잠시 기도하며, 사람의 운명에 대해 잠시 상념에 젖어든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뒤따른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큼 큰 운도 없고, 살아오면서 지금 여기 있는 것도 운이 좋아서일 뿐이라고....



@3. 내 삶의 존재 근거


2조 개 넘는 은하수중 우리 은하, 우리 태양계, 그리고 지구에서 태어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시간적으로 내가 태어날 확률은 더더욱 '0'에 가깝다. 시공간상 태어나기 어려운 확률 속에서 내가 지금 있는 이유, 혹은 존재의 근거가 되시는 부모님 얼굴이 갑자기 떠오른다. 전쟁을 경험한 부모님 세대는 자식 세대들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한 세대이지만, 내가 속한 우리 세대는 그 부모님 세대가 만들어준 다양한 기회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느끼는 그런 복 받은 세대다. 그분들의 삶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가슴속 깊이 받아들이는 감사한 마음. 


Ketherine Jenkins의 <Jealous of the Angels>이 흐르고, 수평선 끝에서 펼쳐지는 구름과 바다와 흔들리는 물결이 한데 엉킨 장면들이 펼쳐지고, 잠시 한없는 평화와 안식의 기운이 나를 감싼다. 아무 걱정도 아무 두려움도 없이 주어진 상황과 지금 여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호흡한다. 그녀의 노래가 가슴으로 밀려 들어온다. 

@4. 탈린 구시가에서의 점심


탈린(Tallinn)이란 이름은 에스토니아어로 덴마크(Taani)의 도시(Linn)라는 뜻인데, 1918년 에스토니아가 1차 독립을 하자 서둘러 이름을 붙인다는 게 그만 탈린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자기 나라 수도의 이름이 타민족의 도시라는 황당한 결과가 나왔지만 다들 그러려니 하는 듯하다. 1219년 덴마크 국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들이 세운 성채에 성을 세우면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덴마크령 에스토니아의 수도로서 13세기에는 한자동맹의 중심지로서 융성하였다. 탈린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도시의 인구는 4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아담하고 예쁘고 사람들도 많지 않고, 한달살이 후보지 1순위로 올려놓아야겠다. 

페퍼색이라는 식당으로 향한다. 가는 길 탈린의 구시가 골목을 잠시 감상한다. 1300년대에 도시의 형태가 만들어졌으리라 짐작하면 이 골목들은 800년 가까운 세월의 풍화를 견뎌온 혹은 그 시간 속에서 계속 변화했으리라. 담벼락들과 지붕들과 바닥의 돌들 하나하나가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 부디 이 온전한 모습 그대로 매력적인 자태를 유지하길 바란다. 입구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분들이 예사롭지 않아 흥미롭게 바라보다가 입장한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흔적들이 곳곳에 있어서 작은 박물관에 들어온 것 같다. 벽면의 지도와 등과 테이블, 기둥 등 세월의 풍화를 견뎌낸 모습이다. 메뉴판도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중세의 식당에 온듯한 착각이 들만큼 메뉴판과 모든 식기 세트들이 우아하고 고풍스러우며 멋있었다. 식탁에 왜 초를 켜놓는지 잘 몰랐는데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중세로 안내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선상에서 참았던 맥주 고픔을 한잔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허니 비어를 모두 추천해서 몇 모금 먹다가 너무 달아서 얼른 라거를 주문했다. 거리이름이 사우나이고 맥주 이름도 사우나다. 여기서는 이런 이름이 흔한가 보다. 깨끗하고 맑고 군더더기 없는 맛이다. 하우스 맥주의 품격과 깊이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우나 다크 맥주를 주문했다. 깊은 질감과 쌉싸름한 약간의 쓴 맛이 입에 착 감긴다.  

단순 명료한 시저샐러드와 달리 다양한 식재료들을 넣어서 솜씨를 한껏 뽐내는 모양새다. 상큼한 채소의 질감과 청량감을 더해주는 소스와 바삭한 크러스트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맛의 풍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병아리콩 카레는 기름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심플하고 담백하며, 카레의 향기를 제대로 풍기고 있었으며,   돼지고기를 바삭한 빵으로 감싼 요리, 소고기 스테이크와 양 요리 등을 서로 조금씩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코로나가 잠잠해져 가니 여러 음식을 주문해서 나눠먹는 것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식당의 분위기가 음식맛을 한껏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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