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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l 09. 2023

매력 넘치는 도시 Tallinn #2


@1. Tallinn Song Festival Grounds(Singing Bowl)


5년에 한 번 송페스티벌이 열리는 Tallinn Song Festival Grounds을 방문했다. 그동안 페스티벌이 진행된 영상을 본다. 평범한 사람들이 다 같이 합창을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래는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힘이 있다. Tallinn Song Festival Grounds는 에스토니아 가요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지역 최대 규모의 야외 콘서트도 이곳에서 열린다. 가요제 경기장의 아치는 최대 15,000명의 가수를 수용할 수 있으며 시청자를 위해 10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 


이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 중 한 명인 Gustav Ernesaks와 쇼스타코비치의 인연에 대한 대목도 흥미롭지만, 인구가 130만 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기획하고 실행했다는 점이 훨씬 더 멋지다.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사람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람들 사이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쉽게 건너갈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수단 중 하나다. 아마도 그는 이런 음악의 힘을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2. Pirita Beach

Pirita 바닷가로 나갔다. 하늘과 구름과 바다가 빚어내는 빛의 조화와 색감이 환상적이다. 별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회화 앞에서 단지 감상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구름과 하늘이 빚어내는 조화로움 속에 잠시 넋을 잃고 보다가 문득 유럽 화가들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들이 그리는 바다와 하늘과 구름의 빛깔들이 왠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흡사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공기가 맑고 미세먼지가 없는 탁 트인 시야와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환경들이 결합해서 만들어내는 빛의 변화에 압도된다. 특히 구름이 아주 낮게 수평선과 맞닿아 있다. 


사진은 내가 본 것을 100% 반영하지 못한다. 좋은 카메라는 다르겠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의 폭과 깊이는 사진이라는 틀에서는 좁혀지고 얕아지고 만다. 특히 하늘과 구름과 바다에 관해서는 더더욱 아쉬움이 든다. 그런데  또 해상도 좋은 카메라를 구해서 찍으러 다닐 만큼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취미로 찍는 편이 편하다. 언젠가는 그렇게 사진을 좀 더 밀도 있게 찍을 수도 있겠지. 



@3. 시간의 풍화를 겪은 St. Brigita 수도원


수녀들과 수도사들이 같이 숙식을 했던 곳을 방문했다. 목조 구조물들은 모두 사라지고 돌로 된 벽들이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살다가 사라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의 기도가 여기에도 머물러 있겠지. 어떤 기도를 했을까? 예수의 가르침이 온 세계를 돌아다니는 그 길목 어딘가에 있었던 사람들.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억지로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지점 어딘가에 내가 그리는 곳이 있겠지. 아니다. 그게 바로 지금 여기다. 


@4.  추위 속 만난 밤 풍경들


작고 아담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머물던 곳이고 브라이언 아담스를 비롯해 여러 유명한 사람들이 묵었던 호텔이라고 한다. 동화에서 봄직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서 탈린을 다시 방문한다면 꼭 묵고 싶은 곳이다. 웰컴 드링크 샴페인을 한잔 마신다. 샴페인의 맛은 깊고 풍부했다. 호텔의 아늑한 풍경을 잠시 감상한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 탈린 구 도심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4시가 넘자 밤이 되었다. 그리고 몹시 추웠다. 

탈린 구시가와 신시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부다와 페스트가 강으로 분리되어 있고 프랑크푸르토도 구도심과 신시가지가 강을 두고 나뉘어 있는데 탈린은 연결되어 있다. 연결된 모양이 좋다. 아트 샵 몇 군데를 돌면서 촛불 반힐 수 있는 집모양의 캔들홀더를 하나 샀다. 또 다른 가게는 미적 감각이 탁월해 보이는 작가의 작품들이 있어서 새 모양의 작품을 하나 샀다. 아주 심플하면서도 예쁜 색감이 돋보였다. 탈린에도 유능한 작가들이 구도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가게 안에서 밖으로 나가기가 겁난다. 오래간만에 어깨가 시릴 만큼 추웠다. 성당에 들러 잠시 기도를 한다. 지금 이 시간 힘들게 견디고 있을 사람들과 떠나간 영혼들을 위해 그리고 내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위해. 작은 촛불 하나를 켜놓고 나왔다. 신부님이 마이크로 뭔가를 읽는데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시 추운 바람을 맞으며 돌아왔다. 숙소인 호텔이 우리를 구해준 느낌이다. 



@5. 저녁 만찬과 늦은 밤 대화


식당은 호텔 지하에 있다. 14세기에 지어진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저녁 식사하는 장소는 마치 동굴에 들어온 듯 아늑하고 편안했다. 서빙을 맡은 젊은 친구는 19살이라고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와인과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로운 메뉴를 들고 올 때마다 친절하고 자세하게 메뉴를 설명한다. 이번에는 서로 나눠 먹지 않고 각자의 메뉴를 먹었다. 나는 장어를 주문했다. 장어는 비릿하지 않고 어떤 양념도 하지 않은 자연의 맛에 소스를 버무린 채소와 함께 잘 어울렸다. 


@6. 탈린 저잣거리


식사를 마칠 무렵 일행들 모두 졸고 있었다. 아마도 이렇게 센 추위는 많이 겪어 보지 못해서 지쳤을 법하다. 다들 올라가고 윤선생과 나만 남았다. 어제는 패트릭, 오늘은 가이드를 맡은 윤 선생과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별로 좋지 못해 그때부터 외국에 나가 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가 핀란드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 헬싱키에 정착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양육하는 문제, 한국 사람들의 문화, 특히 어글리 코리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가이드를 하지만, 참지 못할 정도인 사람들을 만나면 화난다고…. 맞다. 나도 대규모 인원을 인솔하고 유럽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음식타령, 장소타령, 심지어는 타인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했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된다. 얘기를 하다 보니 에너지 수준이 대단히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대하는 자세와 삶의 목적과 죽음에 대한 얘기들을 하며 굉장히 심오한 사고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11시가 넘어 헤어지고 방으로 돌아와 다시 마을 산책을 나가기로 한다. 에스토니아도 7시만 되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하는데, 분명히 노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 군데 펍에 들렀다. 아마도 이 동네 술꾼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라거와 에일 맥주, 다크를 거쳐 다시 라거타입으로 끝내고 호텔로 향한다. 피곤이 몰려와서 오자마자 뻗었다. 



@7.  조식의 즐거움


아침 8시까지 잤다. 단 것과 정제된 밀가루를 먹지 않으면서 몸에 염증반응이 줄어드는 듯하다. 아침에 일찍 눈을 떠도 대개는 피곤했었는데 요즘은 피곤하지 않다. 9시 15분 출발인데 8시 45분에 식당에 갔다. 시간이 많지 않고 대충 먹고 나오려고 했는데 입구에서부터 엄청나게 화려한 조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선 오렌지 주스와 그레이프 후르트 주스는 아주 신선해서 입맛을 한껏 돋워 주었다. 오믈렛을 주문하고 커피는 뜨거운 물을 따로 달라고 해서 한잔 마신다. 뜨거운 기운이 몸속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삶은 연어와 생연어, 하몽과 오이, 토마토를 호밀빵 한 조각 위에 올려놓고 씹는다. 생연어의 짙은 향기와 하몽의 깊은 맛이 어우러지고 오이와 토마토가 그 깊이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식재료들이 벌이는 향연에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이 약간 아쉽다. 체크아웃을 하고 길을 나선다. 

@7. 예기치 않은 뱃멀미


다시 배를 타고 헬싱키로 향한다. 발트해의 물결은 잔잔해서 살살 흔들리는 요람 같은 느낌이다. 배는 미동 없이 앞으로 힘차게 나간다. 지구의 2/3를 뒤덮고 있는 바다! 바다의 빛깔은 뭐라 설명하기 쉽지 않다. 물들이 모여 만든 바다. 온갖 생명들을 품고 있는 바다. 숨 쉬는 공기와 기후를 만들어주는 바다. 잘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들의 온갖 부조리들을 무덤덤하게 감싸고 있는 그 무심한 표정. 12년 전의 바다와 지금의 바다는 그대로인가? 아니면 변화가 있었을까? 긴 시간이지만 대양이 형성되기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찰나의 시간이다. 그러니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위너의 <집으로>라는 노래가 흐른다. 가고 있어 집으로 가고 있어. 파도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면세점에 살 것이 있는지 알아보러 갔는데 배가 휘청거려 겨우 겨우 걸음을 옮겨놓는다. 제대로 뱃멀미를 했다. 등에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일행들 대부분 뱃멀미를 했다. 아니 발트해는 파도가 별로 없다고 했는데 이런 파도는 겁난다. 파도가 겁나는 또 다른 이유는 2014년 이후 배에 대한 트라우마가 나라를 뒤덮고 있어서일 것이다. 변연계가 반응하는 공포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져 애써 태연한 척 하느라 혼났다. 항구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올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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