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연한 만남
오이타 대학에 근무하던 마쯔오 교수는 2009년 한국 대학의 기술사업화 현황을 둘러보려고 무작정 우리 학교로 왔다. 국제실의 안내를 받아 우리 사무실에 오신 분께 나는 최선을 다해 예를 갖췄다. 한국 대학의 기술사업화 현황을 둘러보려면 아무래도 그 각각의 대학들을 방문해야 되는데, 다행히 내가 대학들에 거점 노릇을 하고 있어서 한양대와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 이렇게 네 군데 소개해 드렸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를 연락해 미팅 일정까지 모두 확정했다.
마쓰오 교수는 한편으로 놀랬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해했다. 애초 방한 목적을 조기에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첫 만남이었지만 점심시간에 주꾸미 요리에 막걸리를 대접해 드렸는데 막걸리 맛에 완전히 반한 눈치였다. 일본 사람들이 예의가 바르고 깍듯하고 친절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는 처음이다. 통역은 같이 온 한국인 제자가 도와주었다. 그는 한국 방문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나도 한동안 잊고 있었다.
몇 달 후 마쯔오 교수께서 제자를 통해 내게 연락을 주셨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해서 너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시면서 일본 오이타 대학으로 초청하는 내용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런 게 국제교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산학협력단 윗분들에게 보고를 드리니 즉시 출장 계획을 세워 가자고 하셨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핵심 주제는 마쯔오 교수가 잘하고 있는 실전형 MOT 프로그램에 대한 벤치마킹이었다. 기술경영을 도입하기 전이어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정무적 판단도 한몫을 했다. 우리 학교 일행과 함께 오이타 대학을 방문했다.
@2. 두 번째 만남 - 서로 공감하는 친구가 되다
2009년 겨울 오이타를 처음 방문했다. 마쯔오 교수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일행을 소개해 드렸다. 교수님과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은 털어버리고 서로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연세를 여쭤보니 나보다 18살이 위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인연, 친구 같은 인연은 그렇게 연결되고 있었다. 저녁 식사 때 도쿄에서 먹었던 라멘과 아사히 생맥주가 생각이 났었는데, 이곳에서도 생맥주는 맛있다. 다른 튀김요리와 국물요리는 도쿄보다 자극적이지 않다.
저녁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행을 보내고 나도 숙소로 향하려 했는데 아쉬움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교수님도 마찬가지였었나보다. 한잔 더 하자고 해서 우리는 조용한 술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서로 생활 얘기로 시작했다. 마쯔오 교수님은 나를 만나기 전에는 일본을 응원하는 열혈남아였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이 축구를 하는데, 일본이 지는 날이면 재떨이를 집어던져서 텔레비전을 깨트렸을 정도라고 하니 나도 놀랬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 조용한 성정을 가지고 계신 걸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적의가 사라졌다고 하셨다. 종목과 상관없이 한국과 일본이 시합을 하면 양쪽 팀을 모두 응원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로 인해 한국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고 하니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은 외교관이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공유 지점을 또 발견했다. 아버지에 관해서였다. 교수님은 시골 출신이지만 동경 대학을 나왔다고 하신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광부로 일하신 아버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 역시 아버님께서 광부 일을 10년 넘게 하셨다는 얘기를 드렸다. 마쯔오 교수님은 고생하신 아버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보이셨고, 나 역시 아버지께서 광산에서 고생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우리는 한 잔씩 주고받으면서 얼큰하게 취하기 시작했고 바로 그 순간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쯔오 교수님이 어떤 말을 하고 나면, 그 말을 제자가 통역을 해주는데 어느 순간 통역 없이 내용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제자가 깜짝 놀라서 어떻게 일본어를 모르시는데 그 말 뜻을 알아 들었냐고 했고, 나는 교수님의 표정의 변화와 얼굴색, 어조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스럽게 알아채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말을 하는데 역시 마쯔오 교수님도 나와 비슷한 느낌으로 내가 이런 이런 말을 했을 거라고 얘기했는데, 이번에도 제자가 깜짝 놀랐다.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서로의 말 뜻을 알아듣게 된 것이다.
서로 공감 지점을 단시간에 발견한 사람들에게 주는 축복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신기하고 축복받은 그 밤의 대화 사건은 오래도록 나의 뇌리에 남아있다. 사람 간의 공감, 느낌이라는 것은 언어적인 장벽을 충분히 넘어서서 서로 뜻을 전달할 수 있다.
@4. 세 번째 만남 - 벚꽃 후부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듬해 4월에 내가 주관하는 세미나에 교수님을 초청했다. 인천 송도에서 우리는 만났다. 교수님은 실전형 MOT를 실제 산업현장에서 적용했던 사례를 말씀해주셨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게 되었다. 공장 단위에서 실전 MOT를 적용하는 회사 사례들을 얘기를 했었는데 그 회사들은 각각 독특한 점들을 가지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고 그래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 회사를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흔쾌히 소개해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같이 서울로 올라와 남산 벚꽃길을 걸었는데, 하얀 벚꽃이 바람에 날렸다. 일본 말로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벚꽃 후부키라고 하셨다. 교수님이 제일 좋아하는 술이 벚꽃으로 담근 술이라고 했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 벚꽃잎이 바람에 날릴 때, 벚꽃으로 담근 술을 한잔 하면서 하면서 인생을 논하고 세상을 얘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멋진 한순간 중에 하나라고 얘기하셨다. 그러면 내년 봄 도쿄로 벚꽃 구경을 가고 싶다는 말씀을 건네 드렸더니 엄청 좋아하시고 오시면 꼭 그 벚꽃 후부키를 보면서 벚꽃 술을 한잔 사 드리겠다고 그렇게 약속을 하셨다.
@5. 네 번째 만남 - 국제교류의 장을 만들다
우리의 만남은 이제 조금 더 커졌다. 이번에는 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 관계자들을 모시고, MOT 산학협력 사례를 적용하고 있는 기업 세 군데를 방문하는 일정을 잡았다. 한국에서 출발한 인원이 대략 한 30명 되고 이번에는 오이타대학뿐만 아니라 오이타 시청을 방문해서 시장님과 만나는 공식 일정도 같이 수행했다.
그리고 1박 2일 동안 마쯔오 교수께서 직접 주관하는 MOT 세미나를 개최했다. 모든 일정들이 다시 생각을 해 보면 그 조그마한 인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첫 방문한 곳은 PCB 기판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였는데, 그 MOT 기법을 적용해서 회사에 생산 원가와 생산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 방문한 기업에서는 기업체 대표와 직원이 서로 합의 하에 회사 내 모든 의자를 없애버리고 서서 근무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지금은 모션 데스크 등이 있어서 서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능률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오랫동안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건강에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에 서서 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사실 서서 일하는 것이 약간 불편하게 느껴졌었는데 그런데 특이한 지점은 서로 그렇게 합의를 하고 일을 하게 되면서 근무 시간은 대략 두 시간 정도 단축했고, 업무의 효율성을 150% 정도 올라갔으며 그로 인한 성과 인센티브를 직원들이 더 받게 되었다고 했다.
@다섯 번째 만남과 헤어짐
서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 그러다가 내가 그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가는 바람에 더 이상의 교류의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고, 항공권과 호텔비를 모두 일본에서 부담하는 조건으로 나를 초청했다. 기업인을 한 명 섭외해서 같이 데려 왔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하셨는데 내가 다른 일정으로 그 그 출장을 못 가게 되면서 마쓰오 교수와의 연락이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나이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각자 하는 일이 유사 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한 이 모든 경계를 넘어서 한 사람의 자연인 대 자연인으로 만났다. 일본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거두어들였으며, 마쯔오 교수님도 한국에 대한 편견을 걷어냈다고 했다. 그 뒤로 몇 번 전화연락을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서 아쉬웠다.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한번 만나 뵈었으면 혹은 내년 봄이라도 우리가 동경에 있는 공원에서 만나 벚꽃이 지는 걸 보면서 벚꽃 술을 한잔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마쓰오 교수의 밝게 웃는 모습과 그가 당시에도 여전히 독신으로 계셔서 그 사이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기대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