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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r 26. 2022

음식의 얼굴

사람의 얼굴은 어렸을 때 형성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가 겪은 바와 느낀 바에 따라 조금씩 얼굴이 변한다. 아주 밝았다가도 어두워지기도 하고 어두운 모습에서 밝은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겪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내면의 변화가 외면으로 나타나는 지점에 나는 주목하게 된다. 물론 외부의 사건들도 사람의 얼굴을 변화시키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의 얼굴이 많이 변한다. 따뜻한 대화와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얼굴, 차갑게 식어버린 관계 속에서 굳어버린 얼굴. 그러고 보면, 걱정 좀 덜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아름다운 얼굴을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음식에도 얼굴이 있다. 하나의 식재료로 만들어지는 음식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다양한 식재료가 융합되어 하나의 전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음식의 얼굴은 완성되어 간다. 여기에 식재료를 다루는 사람의 솜씨와 손맛, 그 손맛을 가능하게 하는 그의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와 그가 펼치고자 하는 음식에 대한 구상, 여기에 다양한 양념들이 버무려져 완성된 음식의 얼굴을 만든다. 음식의 얼굴을 사진에 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전체적인 모습과 부분적인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국물요리라면 끓고 있을 때와 식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재료가 완전히 익었을 때와 익어갈 때의 모습이 각기 다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변화무쌍하지만, 음식을 먹는 과정도 변화무쌍하다.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음식의 얼굴은 조금씩 변한다. 가장 완벽한 얼굴은 완전히 빈 그릇일 터이다. 그 빈 그릇은 음식을 담기 전의 빈 그릇과는 확연히 다르다. 음식을 제대로 만들고 제대로 즐겼다는 표시가 그 빈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 빈 그릇은 매 끼니를 채우기 전 공복 상태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난 뒤의 포만감이기도 하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이 바로 이 빈 그릇의 얼굴일 것이라 나는 짐작한다. 


좋은 식재료와 아름다운 마음씨, 장인의 솜씨가 결합된 음식을 마주 대하는 일은 일상 속 가장 큰 의례다. 우선, 음식 얼굴의 바탕이 되는, 식재료가 자랐던 벌판과 산과 들과 바다와 강물을 상상한다. 다음으로 식재료를 애써 수확하고 나르던 무수한 선의의 손길들을 상상한다. 오랜 시간 동안 식재료를 만지면서 터득한 장인의 손이 그동안 거쳤던 시간들과 온갖 경험들을 상상한다. 오늘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그가 품었을 마음가짐을 상상한다. 장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의 얼굴, 그 순간을 포착해 추억 자루에 담는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과 내가 하나가 되고 마침내 음식이 내가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즐긴다. 나는 들에서 벌판에서 산에서 바다와 강물에서 자라난 생명을 먹음으로써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내 운명이다. 기꺼이 나에게 생명을 내어주는 그 존재들에 대해 깊이깊이 감사한다. 내가 수고하지 않도록 그 생명들을 잘 요리해서 밥상 위에 올려놓는 모든 분들에게 그 수고로움으로 인해 내가 살고 있음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의례 과정을 통해 나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간으로 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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