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다양하다. 처음에는 홍어삼합을 많이 먹었다. 홍어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동시에 묵은 김치의 숙성된 맛과 부드러운 수육이 홍어를 감싸며 연착륙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와 충무로를 오가며 홍어에 친숙해진지 10년이 넘게 흘렀다. 근래에는 홍어찜을 선호하게 되었다. 약간 삭힌 시큼한 냄새와 맛에 더해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홍어회를 먼저 내주시길래 밥 한 공기를 시켜서 홍어회와 살짝 버무려 먹고 메인으로 나온 홍어찜을 먹었다. 된장을 풀어 구수한 홍어탕에는 상큼한 얼갈이배추가 잘 어울렸다.
막걸리를 두 병 비울 즈음 사장님께서 특별한 안주 한 접시를 내어주셨다. 처음 먹어보는 말린 홍어다. 말린 홍어는 사연이 있었다. 메뉴로 내어놓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사장님 부군께서 오래전에 만들어놓으신 음식이라고 하셨다. 가게를 두 분이 같이 운영하셨는데 8년 전에 사별하셨단다. 8년 전에 돌아간 신랑이 말렸던 홍어를 냉장고에 넣어 뒀는데 그걸 지금 꺼내서 하나씩 먹는다고 하신다.
햇볕에 말린 음식들은 햇살과 시간이 동시에 축적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 쫀득하면서도 약간은 부드럽고,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말할 수 없는 맛이 숨어있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의 무게와 질감이 박혀있는 살점을 한 점 속에서 느껴보려고 한다. 삶의 이야기들을 녹여 음식을 만드는 것과 삶의 이야기들이 녹아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같은 듯하면서도 완전히 다르다. 깊은 사연이 담긴 음식을 내어놓는 사장님의 마음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삶 속에는 수많은 사연들과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걸 일일이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음식을 통해 사연의 입구로 들어가 다시 음식을 통해 사연의 출구로 나온다. 홍어 한 점을 먹으면서 나의 삶에 대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기껏해야 100년도 못 살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속에서, 오히려 쫓기지 말고 조금 더 느긋하게 천천히 나의 삶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돌아봐야 될 것 같다. 말린 홍어가 지내온 8년이 넘는 시간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인다.
감히 내게 상상할 수 조차 없을 그 세월들을 생각하며 도연명 시 한 수를 음미한다.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이 흩날리는 길 위의 먼지 같은 것
흩어져 바람 따라 나뒹굴다 보면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네
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형제인 것을, 굳이 피붙이 하고만 친해야 할까
즐거울 땐 한껏 즐기고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보세
왕성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오진 않지
모름지기 때맞춰 자신을 독려할 것,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으니.
(人生無根쵷, 飄如陌上塵.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 得歡當作樂, 斗酒聚比隣.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잡시(雜詩)’(도잠·陶潛·365∼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