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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21. 2022

따끈한 제주 맛 - 보말 미역국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세찬 바람은 기본이고, 비바람이 치면 속수무책이다. 제주의 음식은 제주의 날씨를 닮았다.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변주를 맛볼 수 있다. 제주말로 고동인 보말은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다. 뭍에서의 고동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비린내를 잘 제거해서 그런지 지금껏 보말을 먹으면서 비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고동 특유의 약간 비릿 구수 한 냄새도 전혀 나지 않는다. 그동안 제주에 오면 보말 칼국수를 자주 먹어봤다. 보말 미역국은 처음이다. 




어머님은 다양한 재료로 미역국을 끓이셨는데 어느 것도 다 맛있었다. 기억이 어슴푸레하던 어린 시절에는 생일날만 끓여주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주 미역국을 먹었다. 찬 바람이 부는 날이나 추운 겨울날, 몸을 따뜻하고 아늑하게 해주는 미역 국물과 혀에 착 감기는 미역의 질감은 지금 당장 먹는 듯한 추억들을 심어놓았다. 고기를 못 먹던 시절에도 고기를 건져낸 미역국은 맛있었다. 쇠기름이 둥둥 떠있어도 미역이 그 기름기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었다. 


황태를 넣은 미역국은 담백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그러고 보니 쇠고기를 넣었을 때의 국물은 약간 말간 국물이고 황태를 넣었을 때 미역을 더 빛나게 하는 약간 누렇고 진해 보이는 국물이 일품이다. 그러고 보니 미역이야말로 어떤 식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음식이다. 미역은 생으로도 먹고, 냉채로도 먹지만 끓인 미역국에는 미치지 못한다. 저열량, 저지방 식품으로 다이어트에 좋고 식이섬유소가 풍부하여 포만감을 주며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해 주는 한편, 칼슘이 풍부하여 뼈를 튼튼하게 한다.


 


평소 비행기를 잘 못 타기 때문에 날씨에 일희일비한다. 오늘 아침에는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 봐 허둥지둥 오느라 미처 날씨를 관찰하지 못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할 때 창으로 빗물이 부딪치는 걸 보고 날씨가 궂은 걸 알았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덕에 그럭저럭 공포 감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나른하게 전개되는 도입부를 보다 보니 창밖의 날씨나 기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했다. 공항에 내려 버스로 이동하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기사님께 동선에 기사님께 동선 안의 음식점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보말 미역국 집으로 안내하셨다. 


첫 술에 목으로 흘러 넘어가는 미역 국물의 진한 맛이 온몸을 자극한다. 미역은 신선한 바다내음을 살포시 안고 있었다. 씹는 질감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파도를 맞으며 자랐을 그의 생명이 여기서 나의 생명에 포개지며 내 든든한 한 끼니를 책임진다. 줄기를 먹으며 나무줄기를 상상하고 잎을 먹으며 나뭇잎을 그려본다. 바다에서 그 모습 그대로 살았으리라. 하늘거리는 바닷속 풍경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미역국에 곁들인 반찬들 중 단연 눈에 띄는 저 화려한 붉은색의 정체는 갈치 속젓이다. 갈치 속젓은 비릿한 갈치의 내장과 바다내음과 천일염을 한 아름 안고 있다. 양배추에 싸여있다가 입안에서 그 감추어둔 맛이 터져 입안에 번진다. 그 맛은 처음에는 작은 점이었다. 그리고 조그마한 원을 그리며, 다시 좀 더 큰 원을 그리고 입안 가득 채우는 맛의 원이 되었다. 입안에서 점멸하던 그 맛들은 신경회로를 통해 뇌를 자극한다. 뇌에 자극된 맛은 아마도 며칠 동안 기억 속에 그 원들을 남겨둘 것이다. 갈치 속젓에 점령당한 나는 이 무장해제를 반갑게 즐기고 있다. 


미역국과 갈치속젓으로 세찬 바람을 밀어낼 만큼 든든한 한 끼니를 먹었다. 미역국과 갈치 속젓이 만들어내는 주제와 변주는 오후 내내 일상의 몸짓들과 말속에 기분 좋게 끼어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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