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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09. 2022

두부 삼합

맑고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전하는 콩국물은 밥을 먹기 전 입안의 미각 수용체들을 깨어나게 하고 빈 속을 부드럽게 해 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콩국물의 고소한 맛은 변하지 않았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아침 늦잠을 자고 싶으나, 어머님의 재촉으로 아버님이 일하시는 두부공장에 가는 일은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잠을 깨고 콩국물 담을 누런 주전자와 제조 및 배달과정에서 손상된 두부를 담을 작은 빨간색 버킷을 들고 한참을 걸었다. 수증기로 가득 찬 두부공장 문을 열면 앞치마를 입고 작업하고 계신 아버님과 같이 일하시는 아주머니들께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비릿한 콩국물은 처음에는 약간 거북했으나, 차츰 적응되고 고소한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 두 모씩 먹어도 두부는 언제나 맛있었다. 고추양념에 파를 썷어넣은 두부조림은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음식 중 단연 으뜸이었다. 


아버님께서 만드시는 두부, 콩국물, 콩비지는 나와 두 동생의 4년 대학생활을 책임졌다. 두부에 관한 추억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다가 이렇게 콩국과 두부를 먹는 순간 지금 여기로 소환되었다. 음식은 추억을 소환하고, 추억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다정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 내가 그때 거기 있었음을 자각하게 한다. 



봄 햇살이 사선으로 내리비치는 마당 옆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햇살 가운데로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밥을 먹으면 곧바로 졸음이 쏟아질 것만 같은 아늑함이 밀려온다. 적당히 비바람에 풍화된 의자와 식탁은, 빛바랜 모습으로 음식들을 맞아들였다. 


식재료는 일정한 공간 속에서 축적되며 만들어진 생명들이다. 음식을 만드는 곳은 날 것의 식재료들이 오랜 기간 숙련된 사람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는 공간이다. 음식은 시간의 축적된 산물이다. 음식을 먹는 영역은 나의 영역이기도 하고 너의 영역이기도 한데, 축적된 시간과 특정한 공간을 상상하며 먹는 일도 예술의 영역에 가깝다. 상상력과 맛을 느끼는 온갖 감각들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만드는 방식대로 먹어도 맛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먹는 것이야말로 먹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두부는 그냥 시장에서 산 모양 그대로 아무런 열을 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먹어보기도 했고, 데워서 먹기도 했는 데 있는 그대로 썰어서 김과 같이 먹어도 맛있다. 포장된 두부보다는 시장에서 갓 만들어낸 두부는 사서 집으로 오는 내내 차 안을 고소한 향기로 뒤덮는다. 


구수하고 은은한 내음을 풍기는 모두부는 부드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수육 한 점과 잘 묵혀둔 볶은 김치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새우젓과 마늘로 장식하니 두부 삼합이 되었다. 내 방식대로 만들어 먹는 메뉴 하나를 더 추가한다. 김치는 겉절이는 겉절이대로, 익은 김치는 익은 김치대로 맛있다. 푹 익은 김치를 볶은 김치는 입안에서 저항감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김치와 수육과 새우젓을 포근하게 두부가 감싸니 두부 삼합 한 점만으로도 일상의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가지나물과 오이지와 더덕 등 나물 종류들이 봄 햇살을 받아서 그런지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하비 다이아몬드는 <나는 질병 없이 살기로 했다>라는 책에서 육류와 유제품, 가공식품, 밀가루 식품을 먹지 말고 곡류와 과일과 채소만 먹어도 된다고 했다. 질병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물만 먹고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평생 나물을 즐기며 살 자신은 있다. 대지에 뿌리를 두고 그 기운을 머금어서 그런지 계절의 변화는 나물을 통해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여주 능서막걸리는 달지 않아서 좋다. 여주쌀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여주 수원지가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막걸리 맛이 기가 막히다. 두부 삼합 한 점에 막걸리 한잔, 벗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귀가하기에 막걸리는 더 맛있게 느껴진다. 봄 볕이 몸을 나른하게 늘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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