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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01. 2022

베트남 생각나는 맛

큰딸이 독립을 한 지 3주가 지났다. 뭐 갖다 줄 것도 있고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서 길을 나선다. 일요일 오전은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차를 끌고 어딜 가기 딱 좋은 시간 때다. 날씨도 비교적 따뜻해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다. 4층까지 올라가면서 평소 운동을 싫어하는 딸아이가 그래도 이렇게 계단을 오르면서 운동을 하게 되리라 생각하며 미소를 머금는다. 


일요일은 왠지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고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다. 자주 보기 힘든 네 식구가 같이 모였다. 막내딸은 큰딸에게서 컴퓨터를 직접 받을 요량으로 따라나섰다가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간다. 인헌 시장은 규모가 아주 아담하다. 쉬는 가게들이 조금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복작거려서 걸어 다니면서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시장 한 켠에는 꼭 맛있게 먹을 수 있고 가격이 싼 집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시장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키며 자리를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 하루 종일 반복된 노동의 피로를 씻어내는 특별한 노하우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가게를 가건 평균 이상의 맛을 볼 수 있고, 경험상 실제로 그랬다. 시장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홍두깨 칼국수>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2500원에서 3500원 사이에 칼국수를 파는데 그 맛은 여느 칼국수 집에서 파는 칼국수와 마찬가지로 맛있다. 내가 자주 찾는 수원 못골 종합시장 착한 칼국수 집도 그렇고, 망원시장 손칼국수 집, 인천 용현시장 손칼국수 집도 마찬가지다. 

시장 끝자락 쌀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가게는 작고 아담한 크기, 우리가 잠깐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훤한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이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뭔가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할 때쯤 반대편을 보니까 자판기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자판기에 그 주문하는 것이 흔치 않지만 일본에서 자주 접했던 풍경이다. 약간 어색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익숙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큰딸이 지난번 이사 때 밥을 못 샀다고 쏜단다. 왕창 주문했다. 딸이라고 비껴가지 않는다. 얻어먹는 밥은 맛있기 때문이다. 

국물 있는 양지 쌀국수 매운 거 하나, 맵지 않은 거 하나 이렇게 두 개를 시켰다. 보통 사이즈를 시켜도 되지만 왠지 나는 쌀 국숫집에 오면 넉넉한 국물이 있어야 숙주 맛과 국물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두 개 다 곱빼기를 시켰다. 비빔 쌀국수와 불고기 덮밥을 주문했다. 네 명이 먹는데 골고루 맛볼 수 있을 것 같았다. 


2단계 주문은 주로 곁 메뉴(사이드 메뉴)를 주문한다. 우선,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 일반 가게에서 먹어서 화제가 된 분짜와 짜조, 베트남 쌈, 오징어링과 치즈볼 이렇게 네 가지를 시켰다. 내가 살 요량으로 왕창 주문했는데, 결국 딸에게 밀렸다. 은근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계산을 하면서 딸이 놀랬다. 다 합쳐서 5만 2천 원, 네 식구당 1만 3천 원이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이 주인께서 출근하셨는데 주문 메뉴를 살펴보시더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 먹을 수 있겠냐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정작 쌀국수 두 그릇 먼저 나오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릇도 크고 양도 많았기 때문이다. 쌀국수의 국물은 시원하고 아늑했다. 매콤한 쌀국수는 매콤한 맛대로 맛있었고 보통 쌀국수도 맛이 은근히 계속 숟가락을 부르는 맛이다. 


베트남 쌀국수는 한국에서 다양한 맛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각각의 브랜드마다 국물 맛이 독특하고 조금씩 다르다. 오늘 나는 새로운 국물 맛을 보고 있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숙주나물을 더 달라고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원래 숙주나물을 더 달라고 해서 쌀국수 밑에 재워놓고 숨이 죽은 숙주나물과 쌀국수를 고기에 싸서 먹는 맛이 최고인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게 쌀국수를 먹을 수 있었다. 

분짜는 환상적인 맛이다. 국수는 가늘어서 부담 없이 소스 국물에 적셔 먹을 수 있었고 채소와 구운 돼지고기에 몇 조각의 짜조는 서로 잘 어울린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혼자 먹기에 괜찮은 음식이다. 월남쌈과 짜조 역시 맛있었다. 쌀국수를 다 먹고 다른 음식들을 한참 먹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뭔가 한 접시를 슬쩍 식탁에 내민다. 모양이 <반쎄오>가 아니냐고 여쭤보니 <반미>라고 한다. 많이 주문해서 서비스로 주시는 거란다. 반미는 튀김 조각들과 바게트 빵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채소와 소스가 잘 어울린다. 숙주 맛이 촉촉하고 껍질이 바삭한 반세오와 느낌은 비슷하지만 드라이하면서도 감칠맛이 나서 색다른 식감을 선사한다. 


저렴한 가격에 양도 많아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시장 사람들과 이 시장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입맛을 만족시켜줄 만하다. 혼자 지내고 싶어서 독립한 딸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이 가게를 앞으로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다. 다음에 올 때는 무슨 핑계를 대고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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