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회의 맛과 막걸리를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주인장께서 특별한 선물을 서비스로 내놓으셨다. 아니, 멸치회라니! 남해가 아니고 서울 한복판에서 멸치회를 먹게 되다니! 그것도 서비스로! 멸치 빛깔은 은빛과 어두운 빛의 비늘, 드러난 속살이 보기에도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처음 맛보는 멸치회의 신선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는데, 주인장께서 통영에서 매일 직송해온다고 하시니 운반과정에서 선도 유지를 하는 특별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을 것이라 짐작했다.
비릿한 맛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씹을 때 질감은 촉촉했고, 양념들과 잘 어울렸다. 아마도 어떤 채소를 쓰고 어느 정도의 양으로 양념의 깊이를 조절할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라 생각되었다. 멸치회는 그대로 먹기보다 이렇게 양념을 해서 먹는다고 하니 아마도, 양념을 하지 않은 멸치회는 비릴 것이라 추측된다. 쌀쌀한 기운이 채 다시지 않은 3월 봄날 저녁에 멸치회를 먹다니, 선물 하나를 받은 느낌이다. 막걸리의 상대가 바뀌었다. 멸치회를 상대로 막걸리는 인생의 행복한 한 순간을 즐기라고 말하고 있다.
‘멸치’라는 이름은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어버린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말 한자명은 멸치(蔑致), 멸어(滅魚) 등 여러 가지이며, 안초비(Anchovy)라고도 한다. 살과 뼈 전부를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칼슘 섭취가 용이한 영양식품이며 각종 무기질 및 단백질도 많아 성장기 어린이 뼈의 발육에 도움이 된다. 또한 멸치에 많이 들어 있는 칼슘은 뼈가 약해지거나 쉽게 구부러지는 현상 및 불안하거나 신경질이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멸치회 (두산백과 두피 디아, 두산백과)
마무리는 충무김밥.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시장기를 간단하게 해결해주던 충무김밥은 오래 보관이 용이해서 팔았구나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본고장의 맛이라서 그런지 배가 부른데도 남김없이 먹게 되는 그런 맛이다.
첫 번째 스토리 : 충무김밥이 통영의 명물로 등장한 것은 80년대 초. 통영이 충무라고 불리던 시기, ‘국풍 81에서 어두이(魚斗伊) 할머니가 판 김밥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
두 번째 스토리 : 해방 이후 남해안의 충무(현 통영)항에서 고기잡이를 나가는 남편이 고기 잡느라 식사를 거르고, 술로 끼니를 대신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남편이 안쓰러워 김밥을 만들어준 것에서 시작. 처음에 아내가 싸준 김밥은 잘 쉬어서 못 먹게 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밥과 속(반쯤 삭힌 꼴뚜기 무침과 무김치)을 따로 담아 주었는데 그 후에 다른 어부들도 점심 및 간식을 밥과 속을 따로 담은 김밥으로 해결하게 된 데에서 유래된 향토 음식.
세 번째 스토리 : 통영은 해상 뱃길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지금의 문화마당 자리에 있던 구 통영 여객선터미널(‘뱃머리’라고도 불림)에는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이 사람들을 상대로 팔기 시작한 것이 충무김밥이라는 것. 뱃머리 근처에는 배를 타는 사람들을 상대로 주전부리를 파는 행상들이 많았는데 따뜻한 남쪽의 날씨에 상하기 쉬운 김밥은 밥과 반찬을 분리해서 팔았다. 당시 멸치어장에서 잡히던 주꾸미와 호리기 그리고 홍합과 무김치를 대나무 꼬치에 끼워서 김밥과 함께 종이에 싸서 팔았는데 배도 채울 수 있고 맛도 좋아서 인기가 좋았다. 이후 주꾸미는 구하기 쉬운 오징어로 대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충무김밥 (두산백과 두피 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