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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25. 2022

익선동 골목을 지키는 내공


인사동과 익선동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먹는 양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오랜만의 만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게들이 그곳에서 늘 우리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실외에서 마스크 벗고 다니는 것이 부담되는 듯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골목길 풍경이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않다. 이 오래된 거리에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이 보여 반갑다.


2005년 겨울에 우리가 만났으니 벌써 17년이 되었다. 대학에서 같은 일을 하는 여섯 사람이 조금씩 뜻을 맞춰서 만났다. 2015년부터 한 달에 5만 원씩 거둬 두었다가 연초에 2박 3일 가까운 해외로 나가 신나게 먹고 마시고 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2019년 초 칭다오를 다녀온 뒤로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몇 번 계획했던 국내 여행도 수차례 무산되고 말았다. 못 만나 생긴 갈증을 풀어줄 이 골목을 걸으며 가슴이 설렌다. 사람을 만나 살아온 얘기를 풀어낸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 줄 예전에는 정말 잘 몰랐다. 모든 것이 흔하던 시절에서 모든 것이 소중한 시절로 가고 있다. 사람과의 만남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는 시간들이 앞으로 내 앞에 열려있다. 모든 순간들을 소중하게 느끼고 깊이 간직할 수 있는 자세....


마치 처음 물김치를 먹는 사람처럼 그 맛에 깊이 빠져든다. 깊이 오래된 내공을 맛보는 데는 단 한순간이면 족하다. 자연의 맛을 깊이 간직했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시원한 맛의 깊이. 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남도에서 올라온 꼬막은 그 고소하고 찰진 식감을 그대로 선사한다. 반가운 마음에 먹는 막걸리에 체하지 않도록 찰진 맛을 깊이 음미하게 된다. 꼬막을 받쳐주는 채소들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살리도록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식재료도 잘 어우러지도록 적당한 간의 양념이 정겹다. 첫 메뉴부터 극진한 환영을 받는다.   

반찬인 물김치에 놀랐는데 다른 찬인 비지에 놀랜다.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으로 볼 때 두부를 빼내지 않은 비지다. 되비지는 콩을 물에 불려 맷돌에 되직하게 갈아 콩물을 빼내지 않는 것 즉 콩비지를 말한다. 풍부한 콩의 영양과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약간 거친 부드러운 맛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내 몸의 원천이 시골에 있고 시골의 추억은 맛으로 승화되어 나를 지키는 버팀목이기에 그런 약간은 거친 맛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거기 오래도록 머물게 된다. 오래도록 이라 함은 시간의 개념은 아니고 입맛의 여운일 것이다. 어떤 맛은 거의 일주일 내내 상으로 남아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만 이런 특별한 느낌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맛의 여운이 머무는 느낌이 나는 좋다.

육류를 썩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보면 선입견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육류의 미세한 잡내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우설이 등장했을 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후배님들의 권유로 한 점 먹어보니 왜 대표 메뉴인지 알 것 같았다. 부드럽고 쫀득하며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맛에 막걸리를 한 모금 더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소야말로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동물이다. 소머리와 우설, 몸통과 뼈, 심지어 꼬리까지 모든 것을 다 내어준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만나면 만나는 대로 반갑고 만나는 시간이 다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아쉬움을 덜어줄 병어조림이 등장했다. 무와 양념을 곁들인 병어조림에서도 오랜 시간 축적된 내공이 한껏 묻어난다. 지방이 적고 담백한 이 생선에 대해 맛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병어회나 조림을 최고의 요리 중 하나로 꼽는다. 아직 나는 그 정도 맛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병어의 독특한 맛을 잘 느끼지 못한다. 자극적이지 않고 옅은 양념 속에서 고소한 생선살의 맛을 만끽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쉬운 만남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나간 추억은 추억대로 가슴속에 간직했다가 이야기 속에 풀어내고 지금 만드는 추억은 추억대로 차곡차곡 쌓아둔다. 건강하게 만날 다음을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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