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곡성의 태안사로 거처를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와 곧 찾아가겠노라고 했다. 생각보다 길은 멀었고 기차나 버스로는 잘 닿지 않는 곳이라 차로 출발했다. 출발 직후 엄청난 비가 쏟아졌으나, 2월에 보기로 했다가 불발된 벗과의 만남이라 느긋하게 운전했다. 가는 동안 하늘은 점점 맑게 개었다.
처음에는 구례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으나, 아무래도 동선이 어설플 것 같아 태안사 근처에서 숙소와 식당을 구하기로 했고 마침 맛집이 바로 태안사 앞에 있다고 했다. 숯불 삼겹살을 잘한다고 했다. 요즘 육류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즐기기로 방향을 잡은 터여서 반가웠다.
숙소를 구하고 태안사로 향했다.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20세에 척추 디스크 판정받은 뒤로 6년 가까이 통증에 시달릴 때도 절이나 성당에 가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잠시 멎는 느낌을 받았다. 추측하건대 많은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 기도한 기운이 내 허리를 받쳐줘서 통증이 잠시 멎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태안 사는 역사가 깊다. 대웅전에 잠시 앉아 명상을 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원래 우리만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삼겹살이 안된다고 해서 잠시 실망했다. 난생처음 숯불 닭구이라는 메뉴를 접한다. 개울소리가 들리는 밖의 평상에서는 아무래도 모기와 실랑이를 벌일 것 같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반가운 벗과 맥주를 한잔 기울이고 나는 지역 막걸리를 따랐다. 주문을 한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반찬도 내오지 않아 저으기 실망했다. 겨우 삶은 옥수수 한쪽을 먹었다.
김치와 도라지, 삶아 된장에 무친 고추 등 반찬만으로도 충분히 막걸리와 대적해도 될 듯하다.
잠시 후 닭회가 등장했다. 아니 닭회라니!! 난 먹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참을 딸막거리다가 겨우 한 점 입에 넣었는데 그 식감이 예사롭지 않다. 육회의 부드러운 질감과 달리 쫀득하고 톡톡 튀는 질감이 새롭다. 다만, 별다른 맛을 느끼지는 못해 딱 한 점만 먹고 말았다.
한 접시 수북이 내어놓은 닭고기의 질감과 양이 예사롭지 않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주문하면 바로 닭을 잡기 때문이라고 했다. 냉장고에 있던 재료를 내어오는 것이 아니라니 기대감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어린 닭을 식용으로 먹는데 미국이나 브라질은 120일 이상 지난 닭을 식용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 양의 차이가 두 배 정도 된다고. 왜 큰 닭이 맛이 있는지 숯불 닭구이를 먹으면서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 이 닭구이는 내가 그동안 먹었던, 닭갈비나 닭 곱창이나 치킨이나 닭볶음탕과는 차원이 다른 음식이다. 담백하고 깔끔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맛이다. 잘 만든 숯과 닭은 적당한 지점에서 노릇노릇 익고 익기 바쁘게 먹었다. 맛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맛있다고 하는 표현 너머에 있는 맛을 어떻게 표현의 영역으로 끌어내릴 수 있겠는가?
밤은 깊어가고 취기도 오르는데 닭의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녹두와 적당히 어우러진 닭죽과 닭백숙이 나온다.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닭구이는 옆으로 두었다가 싸서 숙소로 돌아간 뒤 출출하면 먹기로 하고 닭죽과 닭백숙을 먹었다.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 국물은 맑고 시원했다. 벗과 오랜만에 대취한다. 오랜만이기도 하고 아주 제대로 된 음식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낮에 사람들이 삼겹살을 소진시키지 않았다면 이 음식을 맛보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안도하며 벗과 헤어져 숙소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