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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ug 08. 2022

치악산 자락의 구수한 맛

휴가, 가족여행, 평화와 안식

가족들과 여름휴가 여행을 가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다들 8월 6일, 7일밖에 시간이 안된다고 하는데 괜찮은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오크밸리에 겨우 방을 하나 잡았다. 문득 치악산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열심히 다니며 구경하는 것보다, 산자락 계곡물에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전 중이라 막내딸에게 치악산 근처 가게를 알아보라고 했다. 가게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小路 비표준어, 사람이 적게 다니는 작은 길로 논둑길 같은 곳, 작고 매우 좁다란 길이라고 사전에서 찾아봤다. 표준어와 비표준어를 구분하는 지점의 경계는 나이가 들수록 희미해진다. 표준어의 기준이 서울의 교양 있는 현대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맛을 만나게 되었을 때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느낌이 든다. 소박한 바깥의 분위기와 축적된 세월의 흔적을 전시해놓은 가게 안의 분위기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은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래된 풍금과 턴테이블, LP판들에 묻어있는 추억들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처음에는 플로어 테이블에 앉았다가 창문 쪽 구석 고즈넉한 방이 있어 그리로 옮겼다. 식사 서비스를 하기에 불편함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미안했지만, 방 안의 분위기가 너무 좋고 양쪽으로 나있는 창문이 간만의 가족 간 휴식을 환히 비춰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1시간여 지난 뒤 많은 사람들이 가게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보니 더더욱 잘 선택했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오디는 상큼하고 달콤하다. 산의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그냥 산속에 파묻힌 느낌이다. 오디와 오디 물은 양배추의 아삭한 식감과 잘 어울린다. 보통의 녹두전은 고소하고 두툼한 그래서 약간은 텁텁한 느낌의 맛인데, 소롯길의 녹두전은 마치 감자전처럼 겉은 아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이내 '순삭'되었다. 처음에 아이들이 김치전을 먹자고 했는데 평소 자주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벗어나 새로운 것을 먹어야 한다는 설득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뿌듯하다. 식사 마무리에 먹어야 할 누룽지를 탕수의 형태로 처음부터 먹을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놀랍다. 아삭하게 잘 만든 누룽지가 탕수 안에서 적당히 숙성되어 부드럽고 달큼한 식감을 선사한다.


더덕과 황태 정식이 도착했다. 모든 반찬은 기성품이 아니라 작품처럼 만든 도자기에 담겼다. 산속의 땅기운을 머금은 더덕과 겨울바람에 잘 말린 황태는 입맛을 돋워주었다. 산과 바다의 대표들이 밥상에서 서로 만나 조우하고 있어서 메뉴 구성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채비빔밥을 먹고자 했던 마음을 알아챈 주인장께서 멋깔스런 그릇에 참기름과 깨와 고추장을 담아내 오셨는데, 정성스레 담은 그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된장만큼 같은 이름이지만 수백 가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이 있냐라고 말하는 아들의 말을 전적으로 수긍하면서 된장국을 한 숟갈 떠먹었다. 맑고 시원하면서 구수한 맛 저 안쪽 깊은 곳에 이 가게만이 가진 내공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계속 된장국으로 숟가락이 향한다.


말린 산나물을 갈아 만든 밥은 좋은 쌀로 지어서 그런지 밥만으로도 훌륭한 하나의 음식이라고 생각되었다. 가족들을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시작한다. 호박무침과 나물과 콩나물과 밥을 넣고 주인장이 만들어준 비빔 그릇에 비빈다. 추석 차례를 지내고 난 후 어머님은 늘 제사상에 차려진 시금치,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를 넣고 한 양푼 가득 비벼주셨다. 비빔밥은 여러 가지 재료가 같이 어우러져 내는 합창이어서 언제나 맛있었다. 비빔밥의 치명적인 맛스런 색깔만큼 밥은 맛있었다.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서로 숟가락 부딪치며 먹는 비빔밥은 더더욱 맛있었다. 치악산 자락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한적한 가게, 앙쪽 창문으로 나무들의 정겨운 풍경이 어우러진 옛 조상들의 살던 숨결을 간직한 방 한편도 조용히 비벼져 있었다.


그간 서로 비껴서 지나 보낸 힘든 순간, 행복했던 순간, 스쳐 지나간 모든 일들이 비빔밥 안으로 들어와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는 시간으로 승화하고 있다. 치유의 시간, 힐링의 시간, 휴식의 시간이 여기 음식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동안 음식을 만들어오신 주인장의 내공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의 언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모두들 밥 안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슬쩍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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