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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ug 13. 2022

한 끼에 담긴 따뜻하고 넉넉한 인심

벗을 만나러 곡성으로 향하는 길은 험난했다.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고속도로위를 주행하는데 불안감이 수시로 창문을 두드렸다. 천안을 지나자 화창한 날씨가 펼쳐진다. 대한민국의 국토가 넓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세종시를 지나는데 조금씩 시장기가 밀려온다. 전주가 동선 안에 있어서 그곳에 점을 찍는다. 전주는 딱 한번 들렀다. 전주 하면 떠올리는 음식은 비빔밥과 전주막걸리와 함께 제공되는 한상 차림. 검색한 곳을 찾았는데 대기손님들이 있어서 왠지 기분이 좋았다. 잘 선택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메뉴를 선택한다. 다행히 만수탕은 아직 100그릇이 다 팔리지 않아 주문할 수 있었다. 각각의 반찬들은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무게로 등장한다. 반찬을 더 갖다 먹을 수 있어서 슬쩍 가보니 전복죽도 서비스로 마련되어 있었다. 넉넉한 인심은 가게를 볼 때 중요한 포인트중 하나인데, 사실 넉넉하게 인심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내어주면서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고 했는데, 그게 어렵기 때문에 지표로 등장한 문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복죽 한 그릇에 담긴 따뜻함이 가슴까지 차올라 여행의 피로를 스르르 녹여준다.


전복돌솥밥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식재료들이 어우러지는데 그 색감이 너무 예쁘다. 당근과 호박과 전복 등 각각을 어떤 크기로 썰어 어떻게 배치해야 가장 맛있는지 수십 번에 걸쳐 연구한 흔적이 녹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추장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비빔밥에 들어오는 식재료들 각각의 맛이 고추장 맛에 수렴되기 때문에 온전한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넣고 비비면 고소하면서도 각각의 재료가 가진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비빔밥의 맛을 더해주는 미역국과 함께 제대로 한 끼를 즐긴다.

낙지와 갈비에 버섯이 어우러진 만수탕이 등장했다. 10cm 정도 높이의 그릇 안에 연포탕을 연상시키는 낙지의 시원한 바다내음과 갈비에서 흘러나온 육수가 맛을 깊게 넓게 확장시킨다. 매번 국물을 먹을 때마다, 국물의 맛을 음미하는 동안 국물의 깊이와 넓이가 무한하게 확장되어 감을 느낀다. 포근하고 따뜻한 국물의 세계에서 위로를 받으며, 그 아득한 국물을 만들어낸 따뜻한 마음을 생각한다.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인 사람들의 흔적이 세대를 거치면서 변화 발전되어 오늘 나에게 한 그릇의 음식으로 다가오는 이 깊이를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눈에 보여서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고 겉만 보게 만드는 가격을 넘어선 곳에 가치의 세계가 무한히 펼쳐진다. 공을 들이고 마음을 쓴 음식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느낄 때마다 계산하는 손이 부끄러워진다. 언제 전주를 다시 찾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는 가능하면 가족들 전체가 왔으면 한다. 이 두 가지 메뉴 외에 다른 메뉴들을 한 상 차려놓게 나눠 먹는다면 더 깊은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늘빛과 구름 빛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별로 더운 줄 모르고 차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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