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먹는 일에 관하여
20대 시절 허리가 많이 아플 때 절, 성당, 교회를 가면 그 공간에 머무는 동안 허리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추측하건대 그곳에 오신 분들이 정성을 다해 기도했던 에너지가 그 공간을 감싸고 있어서 그 기운이 내 허리에 전달된 게 아닌가 싶었다. 오늘 처음 가보는 이 가게는 밖의 풍경부터 안쪽 곳곳에 그동안 거쳐갔던 사람들의 흔적이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인상 좋은 사장님의 모습 또한 주의를 끌어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의 적막한 공간을 나는 좋아한다.
시장기와 설렘이 공존하는 적막을 채워줄 막걸리와 밑반찬이 먼저 등장한다. 고추냉이와 간장, 소금장과 고추장, 마늘과 고추를 버무린 된장은 곧이어 나올 음식들이 입안에서 미각 수용체와 반응할 때 그 반응이 정점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들임을 요즘 들어 더 깊이 느낀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 채우는 삶의 풍성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금이 숙성된 바다와 된장과 고추장이 숙성된 옹기항아리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들을 문득 상상한다. 김치는 내가 완도, 구례, 강진, 장흥을 다니며 맛본 그 김치다. 남도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는 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니, 어느덧 여름이 저만치 지나가고 있다.
새우를 해체하고 고소한 뒷맛이 남을 무렵 드디어 메인 요리가 등장했다. 조선시대 문헌에 따르면 원래 한자어로 석수어(石首魚)라 하고, 그중 큰 것을 면 어라고 불렸는데 백성들은 면어(鮸魚)를 민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과거에는 흔한 생선이어서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여름 보양식으로 찾으면서 몸값이 올라갔다고 한다. 주로 서해와 남해에 서식한다. 번식기는 7월에서 10월이고, 부레를 이용해 개구리처럼 '부욱 부욱'하는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 손질이 길고 성깔이 꽤 있어 조업으로 잡은 민어는 대부분 100% 선어다.(나무 위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음식 자산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맛있는 곳을 알게 되기까지 쏟아부은 기회비용을 기꺼이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가게를 소개해준 선배님은 <여름 민어, 겨울 방어>라는 단순 명료한 말씀으로 민어의 존재를 한껏 부각하셨다. 부레를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약간 물컹한 식감이 사리지고 쫀득한 식감이 입안에 남아 오래도록 입안 가득 퍼진다. 처음에는 어려운 식감이었는데 이제 웬만큼 적응되어 그 맛의 깊이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부레 맛의 깊이가 100m라면 이제 3m 정도 내려간 느낌이다. 선어회는 짠 득한 식감(역시 맛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한계가 명확하다)이 기본인데 민어는 그 짠득함을 완전히 충족시켜주는 맛이다. 민어 뱃살은 또 다른 맛과 모양을 선보인다. 얼핏 적어 보였으나, 넷이 먹기에 충분하다.
오래된 가게는 여유가 있다. 그 여유에서 음식 인심이 나온다. 홍어 한 접시를 내주시는 주인의 인심에 탄복하며 홍어를 한 점 먹는다. 홍어는 언제나 깊게 퍼지는 은은함이 매력적이다. 막걸리의 잔 맛을 씻어주는데 서로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나는 막걸리와 홍어의 조화에 깊이 빠져드는데 혹여 주변 사람들이 맡을 경우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들 한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요즘에는 홍어와 막걸리의 합성 냄새를 차단하여 예의를 지키는 수단이 된다.
민어전과 민어 껍질 전이 등장했다. 껍질을 전으로 먹기는 처음인데 촉촉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몸체와 분리된 껍질은 자체로 민어회와는 다른 음식임을 알게 해 준다. 민어전은 동태전과는 다른 부드러움을 느끼게 해 준다. 여름밤이 깊어가고 취기도 어느 정도 오르고, 얘기꽃이 만발할 즈음 낙지호롱 구이가 등장했다. 한 입 가득 배 어물고 탱글탱글한 식감을 한껏 느낀다. 생물의 물컹함과 정말 익혀 넉넉해지는 그 사이의 식감을 만들어 내려면 아마도 토렴 하듯이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음식을 먹는 일은 기억을 더듬는 일이기도 하다. 입안을 통해 잊고 있던 과거의 맛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이미지 형태로 먼저 올라온다. 뒤이어 추억의 이미지를 감싸고 있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잠시 눈을 감자 무안 뻘에서 자란 낙지를 한 양동이 방에 들여놓고 나이와 직위에 상관없이 앞다투어 먹던 추억, 그 질감들이 지금 이곳으로 소환된다. 음식을 먹고 맛을 느끼는 것은 온몸의 감각과 뇌를 동원하는 예술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도 예술이고 먹는 일도 예술이다. 같이 음식을 나눠 먹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종합예술이다. 예술의 완성은 취기 오른 얼굴로 셀카를 찍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