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로나무 Feb 11. 2023

생명의 근간 미역국과의 만남

몸이 춥거나 마음이 추울 때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된다. 따뜻한 걸 먹고 나면 몸과 마음이 녹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이 깃든 음식을 먹어야 하는 필연성 앞에 무력한 마음이 들 때 나는 그 모든 생각들을 넘어서는 국물에서 위안을 받는다. 국물은 경계가 없으므로 있고 없거나, 이것과 저것의 경계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국물 안에는 따뜻한 기운과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고 그로 인해 웬만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깃들어있기 마련이므로.... 


혀와 입천장과 잇몸과 입안의 모든 미각수용체들은 오직 맛만을 탐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느낄 수 있는 무한대의 맛을 느끼고 집중하는데 수용체들이 집중한다. 미각 수용체가 받은 수많은 정보들은 그대로 뇌로 올라가고 뇌는 그동안 느꼈던 맛과 기억을 다시 꺼내서 하나씩 하나씩 매칭한다. 법정 스님이 입적을 앞두고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팥죽을 먹고 싶다고 하신 뜻은 그 맛이 아니라 맛을 통해 가닿는 기억의 흔적이 가장 중요한 순간의 삶을 받치는 기둥을 의미했을 것이다.  


부산역에 내려 돼지국밥을 먹고 이동할지, 이동후에 미역국을 먹을지 하다가 11시가 넘은 어정쩡한 시간이 그 선택을 쉽게 만들었다. 가게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운대 앞 바닷바람은 푸근했고 간간이 햇살이 내리비쳐 밖의 의자에 앉았다.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모르는 막막함과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의심 사이를 배회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 내가 어디에 있는지 되새기는 마음 챙김 명상이 어김없이 습관처럼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멀리 보이는 동백섬과 오륙도로 시선을 돌리니 그 사이에 바다의 잔물결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은하수의 수많은 별들처럼 촘촘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은은하고 약간은 짙은 빛깔의 국물과 맑고 싱싱한 맛의 미역 그리고 그 사이 싱싱한 굴과 먹기 좋게 정돈된 백합조개가 슬쩍슬쩍 보인다. 육전을 비롯 김치찜과 가자미 튀김 등 다양한 반찬이 밥상에 올라왔지만, 선택과 집중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할 필요 없이 미역국에 집중한다. 미역국물을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어머님이 만들어주셨던 수많은 미역국의 기억들이 맹렬하게 입안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제주에서 먹었던 성게 미역국과 쇠고기 미역국, 전복 미역국, 북어 미역국 등 수많은 미역국들이 그 주변을 안개처럼 감싸며 나타난다.  


한참을 먹다가 가게 입구에 써놓은 문구가 생각나서 들깨가루를 주문했다. 보통의 들깨는 거칠게 갈아놓아 짙은 색인데, 미세하게 갈아놓아 미숫가루 색깔을 닮은 들깨가루를 듬뿍 국물 위로 펼쳐놓았다. 뿌릴수록 미역국 국물맛은 더 진하고 고소해진다. 커피를 마시자마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아이스크림은 더 달다. 아이스크림을 먹자마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커피의 진한 향과 맛이 더 깊이 느껴진다. 미역국물과 들깨가루가 제각기 자기의 존재를 서로 확인시켜 준다. <상호보완적>이라는 말은 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미역국과의 대화는 끝이 없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 대화는 끝을 향하고 있다. 묵은지 김치찜과 육전과 생선튀김에도 손이 간다. 김치찜은 시큼 새큼한 맛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들어간다. 시큼한 맛을 처음 만들고 맛보았을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한다. 한편으로는 놀래고 한편으로는 깊이 맛보며, 이 맛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하던 표정과 그리고 다시 구현했을 때의 성취감을 느꼈을 표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나는 그런 고민을 안 해서 좋다.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서 김치찜의 시큼한 맛 안에만 들어가 있으면 그만이다. 



2박 3일간의 교육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미역국 집에 다시 한번 들렀다. 저 멀리 해운대 바다의 잔물결들이 태초에 생물이 출현했던 시원을 보여주는 것처럼, 미역국은 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원초적인 모습으로 다시 등장했다. 어머님께서 나를 낳으시고 그 힘든 몸을 추스르는데 이 미역국을 드셨을 것이다. 생명이 나고 생명을 지키는 목숨과도 같은 음식 앞에서 숙연해진다. 



오늘은 전복조개미역국을 주문했다. 전복은 원래 그 자리였던 것처럼 싱싱함을 간직한 채 미역국물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껍질과 살을 분리하는 다소의 번거로움은 잠시였고 입안 가득히 씹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음식을 씹는 일의 소중함을 새롭게 알게 된다. 멈추지 않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음식명상을 모르던 시기와 알게 된 시기 사이의 경계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나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는 과정은 단순 명료한 근본을 일깨워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깊은 청국장 맛과 부드러운 주꾸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