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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09. 2023

달콤한 문어 속에 녹는 강릉 겨울밤

1984년의 강릉과 2023년의 강릉사이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이 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도 변화하고 강릉도 변했다. 일상생활 속 변곡점이 생길 때면 늘 좋은 인사이트를 주시는선배님 부부 뵐 생각에 설레고,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강릉에게도 설레는 길이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1시간 40분이면 도달한다니 거리를 단축시키는 변화가 놀랍기만 하다. 거리를 단축시켜 놓은 만큼 작고 아름답고 아스라한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1984년 낯설었던 도시는 언제나 찾아가면 편안히 맞아주는 도시로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선배님 덕분에 예기치 못한 부드럽다 못해 달콤한 문어를 만나게 되었다.


메인 요리를 만나기 전 잠시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라는 자세로 가자미회와 채소를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먼저 등장했다. 가시와 뼈가 촘촘히 박힌 가자미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전혀 매력적인 생선이 아니었다. 가끔 밥상에 올라왔을 때 젓가락으로 열심히 가시를 발려내고 먹다가 그 가시가 살과 섞여 입안에서 정리정돈 되지 않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몇 번 맞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며, 음식에 대한 수용력이 점점 확대된다. 가자미찜과 가자미 구이를 먹기 시작하자 뼈와 가시에 붙어있는 살들을 잘 끄집어내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진화했다. 가자미 물회는 으뜸인 음식이다. 가자미는 어느덧 없어서 못 먹는 매력적인 생선으로 변했다.


그 까다로운 가자미회를 발려낸 솜씨와 부드러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천천히 두 점 내 접시 위에 올려놓고 가자미살의 불투명하면서도 맑은 흰색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입안에서 천천히 씹어 가자미의 살을 온전히 나의 몸으로 받아들인다. 지금 이 순간 여기 가자미회와 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내가 그토록 원하는 음식명상 수준으로 올라간다. 어떤 음식이건 거기에 품격과 품위를 더하고 빼는 것은 오직 나의 몫이다. 식재료가 자라온 바다와 그 식재료가 간직한 특성을 잘 끄집어내 사람들에게 맛을 전달하는 장인의 솜씨를 찬양하면서 이 찰나의 시간을 늘어뜨려 본다.       


그 사이 식탁 위에서는 몸과 마음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그리고 그 생태계에 대해 연구하는 다양한 시선들에 관한 대화가 올라와 있었다. 음식과 몸간의 미세한 작용들, 그리고 그것들을 알아챌 수 있는 기술적 지표들의 발전과 다시 그것이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그 지표들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 진화했고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부지런히 오간다. 미세하게 출발했지만, 그보다 거대한 세계로 향한다. 인간이 먹고 마시는 일의 위대함 그리고 그 위대한 일이 가능하도록 떠받치는 식재료들과 그 식재료들을 입맛에 맛게 만들어내는 음식장인들이 멋지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사임당 막걸리를 태백에서 처음 마셨다. 그때는 술기운이 강하게 느껴져 태백막걸리와 정선곤드레막걸리 뒷 순서로 배치했다. 술이 다 떨어져서 가게에 갔는데 사임당 막걸리 밖에 없을 아쉬운 때만 먹었다. 그 당시 사임당 막걸리는 훌리오 세자르 샤베즈처럼 강력한 인파이터여서 그 무게에 눌려 취하고 말았었다.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낮지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술이므로 아웃복서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며 한잔 또 한잔의 잽을 날리는 막걸리를 선호해 왔다. 그러다가 점점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달지 않은 막걸리도 수용하게 되었다. 특히 송명섭 막걸리나 해창막걸리는 그 무게감과는 달리 가볍게 세상일을 대하라고 가르치는 듯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사임당 막걸리는 그동안 변화하면서 자신의 질감을 완전히 변모시켰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과거의 무거운 질감을 털어버렸음을 직감했다. 단맛의 정도도 가볍고 먹기에 부담 없고 쓴 맛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막걸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또한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물로 만든 술이 제일이라는 나의 생각과도 정확히 일치하는 지점에서 그 한 잔이 내 몸속에 파고드는 신선하고 부드러움을 온전히 느낀다. 지난 시간 동안 선배님이 살아오신 삶의 궤적과 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굳이 다 올려놓지 않더라도 이 한 잔안에 다 녹일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막걸리 맛에 대해 상찬을 늘어놓을 무렵 메인 안주가 등장했다. 안주이기도 하고 식사이기도 하다. 막걸리와 안주는 밥과 반찬의 관계와 유사하다.      


정갈하게 썰어놓은 문어들은 반질반질한 윤기를 드러낸다. 데친 문어는 대개 윤기를 내어주고 부드러움을 갖고 오기 마련인데 윤기를 잃지 않았다는 것은 덜 데쳐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 점 먹는 순간, 그건 나의 선입견이었다. 입안에 착 감기는 여운이 가시기 전 문어를 씹는 순간 한꺼번에 육즙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어서 이 음식을 성급히 넘기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문어가 내게 말을 걸어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몸통과 다리는 생긴 모양만큼 각기 다른 질감을 주되 그 둘을 데치는 기술은 절정의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균일한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마침내 부드움은 달콤함으로 변화했다. 문어가 내게 말을 걸어온 이상 이 맛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표현은 맛의 심연을 벗어나 그저 맛의 끄트머리 어딘가를 헤매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겨울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도루묵 조림 안의 도루묵 알은 껍질이 얇고 부드러운 질감이었다. 도루묵의 살도 보드라웠다. 그로부터 7-8년 지난 뒤 도루묵은 퇴화하고 있었다. 도루묵 살은 조금 더 텁텁해졌으며, 도루묵 알의 껍질은 두꺼워져서 여러 번 씹어야 하고 그 질감은 산뜻한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어쩌다 가끔 도루묵이 생각나서 예전맛을 그리워하며 먹어보면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동안 잊고 있었다. 더구나 도루묵 구이라니! 처음부터 뼈와 함께 먹으려 생각했는데 생선살의 질감은 예전에 내가 그리워하던 그 질감을 선사했다. 여럿이 같이 먹는 음식상에서 욕심을 내면 금방 알아차리므로 적당한 속도와 균형 그리고 안배를 생각해야 하는데, 오래간만에 부드러운 도루묵을 만난 터라 미처 그런 예의를 차리지 못하고 먹고 말았다. 너무너무 죄송한 일이다.      


가게 문을 나서며 상호가 가진 위엄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밤기운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멋진 맛의 선들이 밤하늘에 선명하다. 가자미와 문어와 도루묵이 만든 선명하고 굵은 선들이 나의 입안을 거쳐 미각수용체를 거쳐 뇌에 미각의 기억으로 축적된다. 아마도 나의 뇌 신경망들은 지금의 이 밤기운과 맛의 선들의 선명함을 오래도록 자극할 것이다. 그 자극이 희미해지기 전에 다시 여기로 오리라. 그러면 또 그 사이 생긴 이야기들이 식탁 위에 오를 것이고, 나는 많은 인사이트를 받겠지. 음식과 맛이 사람사이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아 나도 사람과 사람사이를 맛있게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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