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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06. 2023

4월 말 제주에서 삼치회라니!!


@1. Cafe에서 차 한잔 - 아인슈페너


제주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힐링을 제공하는 재주가 있다. 아직 콘퍼런스를 시작하기 전 근처 카페에 들러 차를 한잔한다. 평범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할까 하다가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소금 머금은 아메리카노와 착각했다는 사실은 주문한 차가 나온 뒤 알게 되었다. Einspanner는 마차를 끄는 마부라는 뜻에서 파생된 말이다. 마부들이 피로를 풀기 위해 마셨던 커피처럼 아메리카노에 설탕과 생크림을 얹어 만든 커피다. 당섭취를 줄이기 위해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다가, 온전히 마부가 되어 피로를 푸는 느낌으로 전환했다. 당섭취를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하지 뭐 하는 생각으로 완전히 휘저어 생크림과 커피가 섞여 내는 불투명한 빛깔을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 즐겼다. 먹고 난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2. 오래간만에 몰입한 시간들


충분히 섭취한 당을 소화시킬 겸 오후 세션 모든 시간들을 앞줄에서 보냈다. 세미나에 참석하면 앞줄에서 몰입하는 편인데, 어느 사이에 그런 시간이 저만치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된 느낌이다. 다양한 주제를 듣고 생각해 보고 배울 점들을 정리하는 일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다. 오랜만에 그런 배움의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별로 졸리지도 않았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갈 무렵 호텔 입구에 백남준 선생의 1989년 작품 <벤자민 프랭클린>을 발견했다. 아마 예전에도 그 작품이 그 자리에 있었을 터인데 이번에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뜻이 있는지 살펴보려다가 모든 순간들에 깊은 의미를 꼭 가져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 직관적으로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람모양의 비디오들이 귀엽게 느껴진다. 1989년이면 대학교 3학년 때인데 당시 사람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다. 예술작품을 어떤 프레임에 가둬 놓고 보거나 특정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혹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사람만 누리는 호사쯤으로 치부하던 얄팍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이 작품은 아마도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이다. 호텔 입구의 조각작품 김창곤 님의 <여왕>도 새롭게 발견했다. 아마 내가 봤던 기억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세월의 풍화작용과 기억에 대한 주의의 한계로 흩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저녁식사는 뷔페로 진행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고 줄을 서서 오래 기다리기에 시장기를 견디기 어려울 거 같다. 




@3. 4월에 삼치회라니!!


호텔 앞 회집은 이미 사람들이 많이 차 있었다. 워낙 큰 행사라 사람들이 많이 온 탓이리라. 갑자기 삼치회를 처음 먹었던 식당이 생각났다. 날씨가 비교적 쌀쌀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삼치회를 먹을 수 있다고 하신다. 탑동까지 15분 정도 택시 타고 가는 동안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모인 후배님들과의 즐거운 시간도 감사하고 벅찬데 삼치회라니! 11월에 시작해서 3월 초순이면 삼치회는 끝난다. 추운 날씨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서울에서 가끔 냉동 삼치회를 아쉬운 대로 먹은 적도 있지만, 아무래도 싱싱한 생물 삼치회와 비교할 수 없다. 한 접시의 삼치회를 받아 들고 밑도 끝도 없는 감동에 빠져든다. 언젠가 저 삼치회를 먹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해서 일행들이 미쳐 오기 전에 나 혼자 시켜 먹으며 감동의 바다에 빠졌던 기억이 부드러운 삼치회의 살결 위로 새록새록 다시 올라왔다. 

김에 삼치회를 한 점, 고추냉이와 묵은 파김치 한쪽, 갈치 속젓과 밥을 살짝 얹어 한 입 입에 무는 순간 하루 동안의 피로와 잡념들이 사라져 버린다. 오직 나와 삼치회와의 깊은 대화만이 남는다. 뱃살과 등살 구분 없이 그 부드러운 식감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대화도 잠시 내려놓고 제주 생유산균 막걸리의 깔끔하고 달지 않은 맛과 삼치맛을 번갈아 맛본다.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른다면 첫 삼치회의 맛을 그다음 삼치회들이 결코 메꾸지 못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음식을 어떤 생각과 느낌으로 먹느냐에 따라 효용은 체감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맛있는 시간으로 보내는 전제하에서 그 효용은 체감되지 않는다. 


@4. 덤으로 출연한 준치


사장님께서 오랜만에 오셨다고 준치를 내오셨다. 처음 먹어본다. 생김새가 어쩐지 삼치회를 닮았다. 내가 삼치회에 너무 깊이 빠져 들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식감이 훌륭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값어치가 있는 물건은 썩거나 헐어도 어느 정도 본디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란다. 한동안 기술사업화와는 거리가 있는 곳에서 6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다시 복귀한 나에게 제대로 일을 해서 이전의 실력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착각했다. 


준치는 맛이 좋아 가치가 높으며 조직이 단단해서 어느 정도 상하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러나 여름 준치는 잘 상하는데, 5℃ 가량에서도 잘 번식하는 호냉세균이 있어 냉장고에서도 부패된다. 시인 백석이 1957년 북한에서 발표한 아동시집 <집게네 네 형제>에 실린 시 <준치가시>에는, 원래는 뼈도 별로 없는 생선이었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이 마구 잡아먹어 멸종 위기에 놓이자 용왕이 다른 물고기들을 시켜 자신들의 뼈를 하나씩 이식시키라 했다고 한다. 이때 너무 아파한 준치가 도망가지만 그래도 물고기들이 따라가며 하나씩 친절하게 꽂아줬는데 이 때문에 준치는 꼬리로 갈수록 뼈가 많은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만큼 가시가 기이하게 분포되어 있는 생물이란 뜻이다. (나무위키)


@5. 두툼한 갈치살 속에 깊어가는 제주의 4월 말 봄밤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사람꽃이라는 말이 있다. 그다음 아름다운 꽃을 꼽자면 이야기꽃이다. 이야기꽃밭에서 뒹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문득 다 떨어져 가는 삼치와 준치 사이로 새로운 메뉴를 주문한다. 제주 하면 고등어와 쌍벽을 이루는 갈치. 두툼한 갈치구이에 다시 이야기꽃이 흐드러진다. 갈치 속살에서 빠져나오는 제주 바다 깊은 심연의 물과 제주 막걸리에서 우러나오는 물이 내 몸속에서 만나 순환하며 나를 힐링한다. 깊어가는 봄밤 제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창문틈 사이로 들어와 우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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