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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14. 2023

강된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


@1. 오월 봄맞이 


사월이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오월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이 더디길 바라면 지겨운 일을 하면 되고, 시간의 흐름이 바삐 가길 바라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시간을 느끼는 감각이 점점 무뎌져간다. 세월의 흐름 앞에 그냥 속수무책이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럴수록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좀 더 세심하게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한 달에 한번 정도 면회만 했었는데 가정의 달을 맞아 외출이 가능해져 자식들과 손녀 손자들과 잠시나마 다정한 시간을 보내시는 어머님의 표정이 밝고 환하다. 

 

@2. 처음 가보는 식당에 대한 예의


처음 가보는 밥집은 설렘과 긴장감을 동시에 선물한다. 설렘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긴장감이란 그동안 축적된 내공과 식재료들과 그 식재료들을 다루는 장인의 솜씨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경계하는 마음이 그렇게 향한다. 음식을 만드는 일도 예술의 영역이지만 음식을 먹는 일도 예술의 영역이다. 후각과 촉각과 마침내 미각을 동원해 그 가게 음식의 근본을 탐색하는 일이므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가지런하고 평화롭지 않다면 온전히 느끼고 맛보고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3. 강된장과 마주침


콩으로 만든 메주를 소금물에 발효시킨 식품으로, 발효시킨 소금물을 체에 걸러 끓인 후 식히면 간장이 된다. 콩은 발효시키면 균류에 의해 분해가 이루어져 영양소가 더 잘 흡수되는 것을 이용한 식품이다. '된장'은 '농하다'를 뜻하는 '되다'에서 온 말이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식재료 중에서는 상당히 꾸덕꾸덕한 편이기는 하다. 이북에선 토장(土漿)이라고 주로 부른다. 강된장은 지역에 따라 빡빡장, 깡된장, 깡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된장에 두부, 소고기 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서 자작하게 끓인 장으로 비빔밥이나 찌개에 사용한다.(나무위키) 강된장은 화사한 된장이라고나 할까? 된장이 가진 일정한 맛과는 다르다. 가게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다. 새로운 강된장을 만날 때마다 그 맛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고 그 맛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윤기가 흐르는 강된장에 시선이 멈춰있다. 물론 그 강된장을 베이스로 만든 된장국도 같이 등장했지만, 시선은 강된장에 가있다. 다양한 재료가 섞여있고 어두운 빛깔이 뿜어내는 밝은 에너지가 탐스럽다. 싱싱한 나물들과 찰진 밥에 강된장을 살짝살짝 올려놓는다. 한꺼번에 많이 넣어 간이 세지면 제대로 맛을 음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물된장을 두 술 얹어 놓으니 모양이 그럴싸하다. 한 입 먹는 순간 강된장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벼운 간지럼이기도 하고 짙은 빛깔의 신나는 자극이기도 하다. 오월의 봄이 강된장과 나누는 대화틈새에서 입안으로 들어와 환하게 피어나는 느낌이다. 이 신선한 자극으로 인해 온몸의 신경이 강된장과의 대화에 집중한다. 돋보기로 종이 태우던 어린 시절 그 초점처럼 맛의 초점이 강렬하다. 맛을 말로 표현하는 이 싱겁고 허망한 작업을 그래도 계속해야 하는 이유는 말하지 않는 표현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4. 경계를 넘어서는 맛의 세계


반찬들은 간이 세지 않고 식재료들의 원래 특성들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나물들이 내쉬는 숨결이 몸 안으로 수분의 질감으로 들어온다. 땅이 머금었던 기운들이 줄기와 입을 통해 나에게로 전달된다. 나의 생명의 뿌리가 땅과 바다라는 근원에 있었음을 자각하게 해 준다. 콩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두툼한 두부와 크게 썰어놓은 돼지고기가 두루치기와 국이라는 형태 사이에서 머문다. 국과 찌개 등 음식의 형태에 경계를 두기란 대단히 어려운 노릇인데, 그 경계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이 미묘한 형태들이 선사하는 맛으로 즐거워진다. 사람사이도 이와 같이 경계를 넘나들며 너나없이 유연하고 평화롭게 감정과 대화를 주고받으면 참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음식은 끼니를 해결하고 미각을 자극하며,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새로운 음식을 만난다는 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리라. 



@5.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만날 기약


고향집은 휴식처이자 피난처였다. 어느 설연휴날 차를 몰고 내려오자마자 쓰러지듯이 드러누워 꼬박 4일간 앓아누웠다. 일을 하는 동안 켜켜이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몸으로 덮치자 몸이 견디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고향집에 도착하여 안도하는 순간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만 것이다. 친구들 집 세배도 가지 못하고 앓아누웠다가 마침 연휴기간 문을 연 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고 나니 씻은 듯이 나았다. 모두 나보고 엄살이라고 했는데 그 앓아누웠던 시간이 마치 꿈결 같았다. 


오랜만에 뵌 어머님은 자식들과 손주들 얼굴을 연신 쳐다보며 즐거워하셨다. 코로나로 거의 3년간 격리의 시간을 거쳐 이제 처음 외출다운 외출을 나오시니 자식들 옆이 마치 안식처처럼 느껴지신 모양이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날 기약을 하는 것이 마냥 아쉽지만 그래도 근처에 계시고 코로나 격리가 풀려 언제든 가 뵐 수 있다고 하니 더더욱 홀가분하다. 헤어짐에 익숙한 듯 어머님은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마음 쓸까 봐 쿨하게 헤어짐의 인사를 하신다. 여전히 나는 어머님을 배우려면 아득해 멀었다. 또 뵐날 새로운 음식을 먹을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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