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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May 29. 2023

예상 못한 선물 - 생선구이/감자전

@1. 게으름과 부주의


어머님 면회 일정을 둘째 동생이 잡고 모시고 나오기로 했다. 오전에 병원진료를 마치고 나서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만나기로 해서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다가 11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연휴 첫날 비가 적당히 내려서 당연히 도로에는 차가 없을 걸로 생각했다. 마석으로 가는 길은 고속도로를 포함해서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세 군데 모두 완전히 막혀있다. 내비가 안내해 주는 고속도로를 마다하고 예전 경춘국도로 방향을 잡았다. 처음에는 30분이라 했다가, 다음에는 1시간, 지금은 1시간 30분.... 양치기 소년이 된 느낌이다. 여느 때 일요일 진료를 보던 병원은 연휴로 인해 쉰다고 했다. 비 오는 날 어머님 모시고 카페에서 기다린다고 하니 마음이 더 바쁘고 초조하다. 나의 게으름, 미리 알아보지 않고 길을 나선 나의 부주의를 야단치며 차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먼저 식사를 하시라고 했지만 영 마음이 개운치 않다.


@2. 능이백숙이 아닌 반전


능이백숙을 주문했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 생선구이가 등장했다. 다행히 아주 늦지 않아 식사중간에 도착했다. 어머님은 생선을 한두 점 드시고는 다른 반찬을 드시고 계셨다. 볼락, 가자미, 고등어, 조기 4종 세트의 생선구이와 갈치조림이라는 예기치 않은 선물을 만났다. 왜 예기치 못했냐 하면 상호가 능이백숙이었기 때문이다. 백숙은 있으면 먹지만 즐겨 찾는 음식이 아니라서 사실 음식을 주문한다고 했을 때 그냥 밥만 한 숟갈 뜨겠다고 동생에게 대답했던 터이다.


@3. 어머님과 생선


7살 되던 해 도회지로 나가 시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순대와 간을 주문해서 드시는데 그 간을 한점 입에 물고 토한 뒤로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일체의 육류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는 입안 수백 개의 미각수용체와 후각에 머물지 않고 뇌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심지어는 육류의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음식을 먹었던 식구들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얼마나 불쾌해했을지 짐작이 간다.


어머님은 육류를 못 먹는 맏아들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래서 밥상 위에는 늘 멸치볶음과 고등어구이 혹은 고등어조림이 등장했다. 갈치가 흔하던 시절이어서 갈치조림도 흔치 않게 등장했다. 연탄불을 때던 시절이어서 연탄가스에 노출되시면서 고등어구이를 적쇠에 해서 밥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지금도 어머님이 해주시던 고등어구이 냄새가 솔솔 나는 것 같다. 고등어에 무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고춧가루를 얹은 고등어조림은 약간 비릿한 맛이 있지만, 육류를 아예 손도 못 대는 나는 전혀 비위가 상하지 않았다. 갈치구이와 갈치조림 역시 즐겨 먹던 반찬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육류로 채우지 못한 단백질을 생선을 통해 보충했다. 어찌 내가 그런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4.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1987년 대학 입학할 때만 해도 학교 주변에 생선구이 백반을 하는 곳이 많았다. 어느 지역을 가건 백반집이 즐비했고 너나없이 조기, 고등어, 삼치와 같은 생선구이 백반을 하는 곳도 많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생선구이를 하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가정집에서도 생선을 굽기가 쉽지 않다. 그 냄새도 잘 배출되지 않고 번거롭고 뒤처리도 만만치 않은 데다 처음에는 생선 비린내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음식점도 애로사항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종일 생선을 굽는 수고와 그 뒤처리를 생각하면 나라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5. 볼락과 볼볼락


우럭과 비슷한 생김의 볼락을 부산에서 처음 접했다. 전혀 새로운 어종을 만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볼락과 볼볼락으로 구분된다. 그 볼볼락의 다른 이름이 열기다. 열기와 임연수어 그리고 삼치 역시 어머님께서 자주 구워주던 생선이었다. 볼락구이는 식감이 부드럽고 고소한 반면, 볼볼락은 육질이 약간 단단하고 씹는 맛이 있어서 각기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볼락이 훨씬 더 비싸고 부산과 같은 남쪽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열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바다맛을 본다. 간이 세지 않고 부드러운 갈치조림, 두툼한 고등어, 짠 득한 조기살, 고소한 생선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자미 구이를 차례로 맛본다.


@6. 예상 못한 선물, 감사한 마음


접시에 덜어놓은 솥밥의 식감이 너무 좋아 오래간만에 밥을 다 먹었다. 생선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능이감자전이 밥의 역할을 대신한다. 보통의 감자전도 식감이 부드럽고 짠 득한데, 능이를 넣은 감자전은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모든 감자전을 잠시 잊게 해주는 맛이다. 부드러운 찹쌀떡의 식감에 능이의 향과 감자전 특유의 맛과 깊이가 결합되어 새로운 맛의 세계를 보여준다. 예기치 못한 선물 하나 더 받는다. 창밖에 내리는 비가 감자전의 식감을 한껏 돋운다. 습기가 많은 날은 전을 부치면서 살짝 배인 기름의 고소함이 더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문득 이렇게 예기치 못한 선물 한 상을 받아 들고 열심히 먹다가 어머님 얼굴을 바라본다. 마치 어머님은 내가 어릴 적 생선을 구워놓고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보는 것처럼 흐뭇한 표정이시다.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아들은 아들이다. 게으름과 부주의 끝에 체벌을 받지 않고 예기치 못한 생선구이 선물을 받고 보니 일상사가 다 어떤 계획과 의미를 갖고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그저 순간순간 다가오는 일들을 맨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선물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다.


코로나국면이 정리되고 가장 홀가분한 일이 어머님 면회와 외출하는 일인데, 이제 아무런 제약이 없다. 좀 더 부지런히 그리고 자주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한 감사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다. 어머님을 만나게 되면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게 될지 기대된다. 선물을 하나 더 받았다. 멀리 구름과 안개가 싸고 있는 산자락의 모습이 마치 섬처럼 아득하고 현실을 벗어난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어머님과 작별하고 집으로 향하는 가슴에 아늑함 한아름 안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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