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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Apr 21. 2023

외할아버지의 세 가지 가르침

@1. 나의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김익규 님은 안동에서 한학을 공부하셨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셨으며, 공부한 것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으로 사회적인 활동도 열심히 하셨다. 사람들의 삶을 살피고 개선하려던 사회적인 활동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억울한 옥고를 아주 오랫동안 치르시다가 출소 후 4년 만에 돌아가셨다.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장례식을 치르러 가는 길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내 나이 다섯 살이던 1972년 어느 날이었다. 개울을 건너면서 하염없이 우시던 어머님의 모습과 조용히 흐르던 개울물의 대비가 아주 선명했다. 세월이 흘러 외갓집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의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까웠다. 살아생전 다섯 권 이상의 책을 집필하셨다는데 세월의 풍화와 나의 게으름으로 그 흔적을 찾지 못했다.

@2. 세 가지 가르침


어머님은 틈만 나면 외할아버지가 평소에 말씀하셨던 가르침 세 가지를 나에게 들려주셨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어리 벙벙했었는데 계속 반복해서 들려주셔서 그 메시지는 분명히 내 기억 속에 자리를 잡았다. 다만 그 가르침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그 가르침의 의미를 어렴풋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꽤 여러 각도로 깨닫게 되었다. 물론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다고 느껴지지만, 일상생활에 있어서 하나의 기준이 될 만한 가르침이라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 3. 첫 번째, 잔돈은 아끼되 큰돈은 써라


오십 대 중반에 이르도록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덕목이 되었다. 늘 돈이 모이기 바쁘게 써버려서 돈을 사용한 흔적이 남지 않았던 일이 다반사다. 잔돈은 쓰기가 쉽고 큰돈은 만들기 어렵다. 이 단순 명료한 그러나 가닿기 너무 힘든 시간들을 겪어내면서 왜 이런 가르침을 주셨는지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돈을 모으고 돈을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상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돈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지 않고 돈에만 집중하게 되면 중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 중심은 내가 어떤 가치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느냐에 달려있다. 돈 사용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잔돈을 아끼라는 것은 잔돈은 써봐야 그 가치가 미미하고 큰돈은 가치도 크고 사용한 흔적이 그대로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깊이 남기 때문일 것이다.



@4. 두 번째, 사람의 층은 대략 구만 층이어서 그에 맞게 사람들을 대하라


사람의 수준이 10종류가 아니라 9 만종류라고 하는 것을 확인할 길은 없으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각기 다른 사람들의 특성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태어난 곳과 환경이 다르고, 성장 스토리가 다르고,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생각이 다르며, 지향하는 바 또한 제각각이다. 내가 그런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함에 있어 이 가르침은 기준이 된다.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함에 있어서 나의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눈높이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춰서 생각해야 되는 게 아니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내가 9만 층 수준의 사람들을 모두 대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사람들을 대한다고 가정해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매일 배우고 깨달아가면서 나의 수준을 높이는 것과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눈높이를 맞추고 대하는 것은 동시에 진행된다. 그래서 너무 낮은 수준이라고 얕보는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고 높은 수준이라고 지레 겁먹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 눈높이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할 수 있다. 평생 만나 교류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숫자가 150명 안팎이라는 통계는 아주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뜻할 것이다. 우리는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이 가르침은 내가 마음의 동요 없이 평안한 가운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준이 될 것이다.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것!!

@5. 세 번째 가르침, 향기 나는 사람이 돼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르침이다. 난 한 번도 향기 나는 사람의 반열에 도달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2012년 룩셈부르크로 출장 갔을 때 아시아 사람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질을 발견했다. 물론 유럽전역을 가보지 않아서 유럽을 일반화시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 당시 발견한 내용은 이렇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 음식점에서 만난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각자의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물론 내가 그 사람들의 내면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내면에서 형성된 자신만의 스타일이 시각적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그 사람의 향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라 생각한다.


향기는 아무래도 내면에서 흘러나와야 하는데, 그게 혼자 있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느냐와 관련이 있다. 타인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포용력, 이해심 이런 것들이 합쳐졌을 때 그게 향기로 나타나지 않을까?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 같은 분들은 진한 향기를 사람들에게 주고 그 향기를 맡으려 사람들이 따랐던 게 아닐까? 사회적 위치와 향기는 별개라 생각한다. 그 위치가 그 사람의 향기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뿜는 향기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 말하고 행동함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평생의 숙제다. 그런데 이 숙제는 왠지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이 막막한 숙제를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단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봄바람에 실려오는 짙은 라일락 향기와 같은 향을 조용히 흩뿌리며 사람들을 편안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의 모습을 오늘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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