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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Feb 18. 2023

잃어 간다는 것과 얻는다는 것

@1. 심란한 청력검사 결과


한 달 전부터 귀에서 삐이 하는 전자신호음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전에도 간혹 조용히 있을 때 그런 잡음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매 순간 지속되는 소리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 최근 일이다. 크게 신경이 쓰이거나 잠을 못 이룰 정도가 아니라서 가볍게 생각하고 지나다가 시간을 내서 이비인후과를 방문했다. 작년 10월에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경도 난청이라는 얘기를 흘려들었다. 4가지 청력 검사도중 피곤이 밀려와 잠시 졸았다. 그럼에도 결과는 내 생각보다 심각했다. 특히 4K 영역의 청력이 낮게 나왔다.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정기검진 때와 마찬가지로 경도 난청이라고 한다. 청력이 감퇴될 초기에 미리 알고 방문을 했다면 어느 정도 치료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은 그 상황은 넘어섰고 청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명현상이 발생한다는 무미건조한 의사 선생님 말씀이 창처럼 몸에 날아들었다.



@2. 음악과 친해지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FM을 알게 되었다. 태백에서 자라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라디오는 AM밖에 듣지 못했다. 강릉으로 고등학교를 가고 하숙집을 구하고 부모님께서 선물해 주신 LG카세트를 통해 FM 89.1과 91.9의 신세계를 알게 되면서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돈나, 마이클잭슨, 브루스 스프링스틴, 듀란듀란, 필 콜린스, 로라 브레니건, 신디 로퍼, 프린스, 폴리스 등등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2시 김광환의 팝스다이얼을 통해 수많은 팝음악을 접하면서 객지에서의 외로움과 야간 자율학습의 무거움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께서 장만해 주신 삼성 마이마이와 이어폰을 통해 처음 들은 곡이 머레이 헤드의 <One night in Bangkok> 소리가 만들어주는 지평선과 수평선 그리고 무지개와 은하수들 속에서 마냥 즐거웠다.


대학입학 후 세운상가에서 샀던 소니 워크맨과 아이와 워크맨… 락과 하드락, 클래식과 뉴에이지, 샹송과 칸소네 등의 월드뮤직… 음악이 선사하는 지평은 한없이 넓어지고 깊어져갔다. 모차르트의 <Requiem>은 테이프가 끊어져서 다시 샀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과 4번,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교향곡 5,6,7,9번, 쇼팽의 폴로네이즈와 피아노협주곡,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위대한 예술가를 위한 추억, 교향곡 6번, 바흐의 평균율....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레퍼토리들을 섭렵하면서 소리에 심취하고 점점 크게 들었다. 어느새 음악은 내 삶의 일부분을 파고들어 일상이 되었다.

@3. 잃어 간다는 것

척추디스크 판정을 받던 날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평생 허리 통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사회생활도 가정생활도 온전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두려움은 통증을 이겨내고도 남았다. 37년이 지난 지금 결혼하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아이들은 성장해서 이미 둘은 경제적으로 공간적으로 독립했다. 막내도 대학 2학년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공부를 하고 있다. 그 두려움이 나를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그 두려움 속에서 몸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키우고 통증에서 조금씩 놓여나면서 지금 여기 이렇게 서있다. 경도 난청 역시 나를 두려움에 빠뜨렸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고,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잃는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이별 통보가 아니고 서서히 감퇴되는데 그 시기를 내가 더 늦출 수도 있고 앞당길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생각해 보면 최악은 아님에 안도하고 내 소중한 삶에 감사한다.  


@4. 얻는다는 것

오래간만에 새마을호를 타고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Bruch의 <Scottish Fantasy>와 Kol Nidrei, 바이올린협주곡을 듣고 있다. 감미롭고 낭만적이며 환상적인 선율. 아 얻는다는 것은 이런 느낌인가? 볼륨을 낮춰도 음악이 선명하게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다. 자극적으로 크게 듣지 않아도 세세한 음들 그리고 그 음들 사이로 브루흐가 전달하고자 하는 곡의 분위기와 느낌이라는 대륙 근처 어딘가에 아주 조금은 가닿을 수 있을 것 같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 보여주는 수천억 개의 대륙들 그 하나하나에 가닿는 발견도 그 의미가 적지 않다. 감각이 느끼고 감각이 수용하는 정보들은 내게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음악을 듣고 느끼고 작자의 의도에 조금이라도 가닿거나 설령 가닿지 못하더라도 그 중간 어디에선가 배회해도 좋다. 그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하나 더 얻은 것이 있다. 아껴 써야 한다. 언젠가는 이 지상에 놓고 갈 나의 모든 감각기관들과 신경들을 혹사시키지 않고 아껴 써야 한다는 것을 얻었다. 작게 듣고 적게 듣는 대신 듣는 순간 집중하고 몰입하며 음악이 선사하는 선물들로 매번 샤워를 하리라. 음악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명약이라. 지금 이 순간 여기 내가 있고 음악이 있고 평화와 안식이 깃든다. 차창사이로 지나가는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과 같고 순간순간 내리비치는 햇살이 내 몸을 아늑하게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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