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가득한 시장에서 소박한 맛을 발견

인천 용현시장

by 새로나무


누구나 어머니의 손맛을 소환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머님께서 해주시던 잔치국수와 칼국수에는 특별한 맛이 있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특별히 그 소환에 어려움이 없다. 덩치가 큰 멸치로 우려낸 국물에 김과 대파와 어머님표 양념장이 갖춰진 잔치국수는 매번 한 그릇 더 먹었다. 잔치국수는 후루룩 잘 넘어가는 음식이기도 하고 구수한 멸치 국물은 속을 데우는데 그만이었다. 칼국수에는 아주 특별한 재료 두 가지가 다른 국수와는 달랐다. 고추장과 두툼하게 썰어 넣은 감자다. 고추장의 날카로운 매운맛은 감자가 어우러진 칼국수 국물에서 한층 부드러운 맛을 내면서도 뒷맛은 약간 매운맛의 개운함이 뒤따라왔다. 감자에서 우려 나온 전분은 칼국수 국물과 면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거의 보름 이상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보디빌딩 대회 출전일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에게 인천의 한 스튜디오에서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면 거의 세 시간을 가야 한다고 해서 아내와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비가 무섭게 내리고 있다. 아들이 촬영하는 동안 바로 앞 용현시장을 나갔다. 시장은 <설렘> 자체다. 오랫동안 가게를 지켜온 사람들과 그들이 전공한 분야의 음식과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부담 없는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다. 한 끼에 한 그릇밖에 먹을 수 없음에 대해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다. 그 가끔이 바로 지금이다. 무얼 먹을 것인지 선택할 겸, 시장을 두루두루 구경하며 두 바퀴를 돌았다.


멸치육수 베이스라고 짐작되는 잔치국수와 칼국수는 단출하고 깔끔했다. 어느 때와 같이 그릇을 들어 한 모금 국물을 마신다. 편안하고 따뜻하게 속을 감싼다. 칼국수의 면은 손으로 직접 빚었다. 손으로 빚은 면발은 쫄깃하고 속이 차있어서 식감도 좋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아 그런데 옆 테이블 손님들 세 분은 모두 수제비를 주문했다. 밀가루를 뭉치지 않고 얇게 펴서 만든 수제비는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 오늘은 수제비인가 보다는 탄식이 나도 모르게 밀려 나왔다.


김광석의 <노래 이야기, 인생 이야기>라는 앨범에서 그는 맛깔난 대사로 짜장과 짬뽕의 갈등관계를 묘사한다. 짜장면을 시켜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짬뽕을 먹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아 오늘은 짬뽕인데'라는 생각이 들고 또 다른 날, 짬뽕을 시켜 먹는 데, 옆 테이블에서 짜장면을 먹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아 오늘은 짜장면인데'라는 생각이 든다고. 꼭 그런 기분이다. 그런데 어찌하랴, 먹는 양에는 한계가 있고 설령 수제비를 추가한다고 해도 배고픔과 함께 먹어야 맛을 알 수 있는 곳에는 다다를 수 없다. 그 지점은 이미 포만감이 길을 가로막아 갈 수 없음을 알기에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들이 시장 근처 도넛 맛있게 하는 곳을 추천해줬다. 꽈배기와 찹쌀, 팥 도넛은 시장에 가면 늘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메뉴였다.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간이 의자에 앉아 주섬주섬 검은 비닐에 다양한 도넛을 담고 오랜 세월을 살아낸 손으로 한 움큼 넉넉하게 뿌려주는 그 설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죽만 해놓고 바로 튀기지 않고 손님이 오면 그때그때 만들어낸다. 설탕은 선택이기에 쳐달라고 했다. 꽈배기는 겉은 여느 꽈배기처럼 바삭하지 않고 부드러웠으며, 안은 촉촉했다. 팥 도넛은 팥앙금이 적절하게 차 있어서 입맛을 자극했으며, 감싸고 있는 튀김옷은 기름기가 없어 보였고 실제로 먹어보니 깔끔했다.


그리고 핫도그는 바삭한 찹쌀가루의 튀김옷이 살아있고 소시지를 감싸고 있는 밀가루 부위는 촉촉했으며, 소시지는 난생처음 핫도그를 먹던 그때로 곧장 나를 데려다주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어떻게 45년 이상된 맛을 소환할 수 있는지.... 초등학교 1학년 때 노트를 사라고 아버님께서 20원을 주셨는데 그 당시 처음 구경한 핫도그가 10원이었다. 물론 핫도그를 사 먹었다. 그리고 10원짜리 노트를 사 갔다는데, 연필만 대면 쭉쭉 찢어지는 광경을 아버님께 들켜서 혼났던 기억도 같이 소환되었다. 음식은 추억을 소환한다. 거센 빗줄기를 뚫고 도넛과 소시지는 나를 아늑한 추억 속으로 데려다주었다. 잠시 잠깐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도넛 가게는 오래 앉아 있기에 민폐가 될 것 같아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 한잔이 진해 뜨거운 물을 타서 먹는다. 고소한 커피는 도넛과 아주 잘 어울린다. 커피 한잔을 곁들이며 창밖에 무섭게 들이치는 빗줄기를 보고 있노라니 왠지 아늑한 피난처에 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오후가 가고 있었다.


시장에 가면 설렌다. 부모님과 함께 갔던 어릴 적 추억만이 아니라 자라는 동안 자주 찾던 그 가게들과 거기서 나오는 음식 냄새와 물건 냄새가 복합적으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람들의 인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람들이 건네는 말과 날씨와 그 지역의 향토색이 온전히 시장 안에서 감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골라먹는 재미가 살아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 가야 내가 살아있음을 더 깊이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시장이 너무 좋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바람이 불건 시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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