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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무 Jun 20. 2023

단순 담백함의 마법

@1. 무생채와 열무로부터


가게의 외관이 상가 주택이 길게 정열 된 곳 중 하나라 약간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무생채와 열무를 내어놓는데, 이 음식들은 웬만하면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음식이되, 맛을 내기가 쉽지 않은 재료다. 무와 열무의 식감과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면 소금과 고춧가루를 비롯한 양념들이 깊게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질감을 확인하고 계속 젓가락이 간다. 더운 여름날이라 무생채와 열무의 수분이 몸에 잘 흡수되어 기분이 전환된다.


@2. 간만의 보리밥


세 숟가락을 떠서 담은 그 양은 애피타이저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둔 것일 텐데 양이 아주 적당하다. 무생채와 열무김치에 약간의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다. 음식을 먹을 때 고추장과 초고추장이 음식맛을 방해하지 않는 선을 선호한다. 재료가 많으면 아예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횟집에서도 웬만해서는 초고추장을 먹지 않는다. 고추장이나 초고추장 맛이 워낙 뚜렷해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옅게 비벼진 밥을 한 술 뜬다. 시장기를 잠재우면서 보리밥과 무생채와 열무의 식감을 확인한다. 단순 명료한 맛이다. 잠시 지그시 눈을 감고 이 맛을 음미하면서, 내게 주어지는 삶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렇게 단순 명료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잠시 소망해 본다. 소박한 맛이다. 거대 담론에 비껴 서서 소박한 결론에 도달하면서 안도하고 있을 나의 미래 모습을 그려본다.



@3. 메밀막국수


메밀함량 100%를 선호하는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막국수의 원래 취지대로 막 비빈다. 여느 때와 달리 별도로 막국수 육수를 달라하지 않고 주인장의 계획대로 먹어본다. 양배추와 오이와 무 등 채소와 김 등이 잘 어우러져 기대와 달리 고소하고 시원하다. 육수는 약간 특이한 맛이 풍긴다. 메밀함량이 30% 이상이라지만 함량이 낮으니 자연히 쫄깃한 식감을 맛볼 수 있다. 툭툭 끊어지는 메밀국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큰 규모 혹은 찾는 사람이 많고 인건비가 넉넉하며 재료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면 이렇게 현실적인 대안의 맛을 찾는 것도 방법이리라. 100%만이 진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니 그동안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언제 100%였던 적이 있었던가?


@4. 단순 담백한 맛을 만나다


감자옹심이메밀칼국수의 국물을 한 술 뜨는 순간 아 하는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한 술, 또 한 술 뭔가 늪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따뜻하고 단순 명료하면서 아늑한 맛의 세계로 깊이 들어간다. 감자가 원래 어떤 음식이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감자육수와 옹심이가 말을 한다. 약간은 거칠되 고소한 식감의 옹심이가 몇 알 보이지 않았는데 국물을 먹을수록 계속 생긴다. 쌀등 곡식이 부족할 때 먹던 음식이리고는 생각 못했다. 보이는 모습도 있는 듯 없는 듯 보이고 먹는 맛도 단순 명료하며, 기술적으로 뭔가 만든듯한 서걱대는 식감과 부드러운 목 넘김, 감자육수를 별도로 더 줄 수 없냐고 물었는데 한 번에 끓여낸다고 한다. 이 감자육수의 식감과 맛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번 올 궁리를 한다. 웬만한 해장국의 아늑함 이상을 맛본다.

세 조각의 감자전은 음식의 양도 양이지만 그 질감과 촉감이 매우 뛰어나다. 감자전을 내가 좋아해서 그런 건지 이 가게의 감자전이 뛰어난 건지 구분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감자전 맛을 깨끗이 잊게 해 준다. 과거의 음식이 가졌던 화려함과 지금의 음식의 현재성 앞에서 기억 속에 가물가물거리는 맛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재료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고 그것이 빛을 발하는 지점까지 끌고 들어가는 힘과 적절한 맛의 정점이 되었을 때 과감히 중단하는 절제력 속에서 탄생한 감자전의 촉촉하고 깊은 맛을 보면서 감자는 원래 이렇게 완벽한 식재료임을 깨닫게 된다.


감자


내 사랑은 심심하지만

알고 보면 깊은 농염이다

내 사랑에 온갖 맛이 들어 있다는 건

깊이 다가와 본 사람 다 안다

춘궁(春窮)이거나

춘궁 같은 허기 거나

허기보다 더 아득한 마음일 땐

심심하고 둥근

둥글고 부드러운 내 몸에

당신의 이빨자국을 찍어 보라

당신이 가진 온갖 맛

떫거나 시거나 쓰거나 짠맛, 맛들을

순하고 착하게 껴안아주리

내 살 깊이 품었다가 온전한 농염으로

다시 당신께 돌려보내리

(안차애·교사 시인, 1960-)


정선, 영월, 강릉, 삼척 등 강원도 영동에서 주로 먹던 음식, 감자를 갈아서 새알심처럼 만든 것인데, 새알심의 경기, 강원도 방언으로 혼용되었다. 쌀이 부족한 시절 국에 넣어 먹었는데, 국물이 조금 되면서도 감자로 만들어 저렴했기 때문에 애용되어 왔다. 현대에는 감자를 거칠게 갈아 다른 첨가물 등을 섞어 감자의 서걱대는 식감을 주는 방식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사실상 감자수제비나 다름없다. 감자옹심이는 먹거리가 부족했던 옛 선조들이 겨우 낸 삭힌 감자에서 나온 녹말을 활용하여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 음식이었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 항아리에 넣어두었던 씨감자 중 상하여 사용하지 못하는 감자를 골라내여 완전히 삭히면 그 감자녹말을 얻을 수 있다. 겨우내 통째로 삭힌 감자에서 얻어낸 녹말을 반죽한 뒤 주변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채소국물에 끓여 먹던 것이 감자옹심이의 유래이다. 이처럼 다른 첨가물 없이 산골에서 삭힌 감자 자체에서 받아낸 녹말 100%를 활용한 쫄깃한 식감의 감자옹심이가 전통적인 제조방식 원형이다.(나무위키)



원자처럼 더는 나눌 수 없는 단위로 내려갔을 때의 근원처럼 맛에도 그런 단위가 있다. 그걸 여기서 맛본다. 원자화된 단순함과 담백함을 지닌 음식은 마치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복잡하고 잡스러운 생각들에서 놓여나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나온다. 여름 한가운데로 향하는데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나? 아니면 단순함이 만들어낸 마법의 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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