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만의 군산행
10년 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구도심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새만금 방조제 바닷가의 풍경, 들판에 익어가는 쌀나무들의 풍경이 아득히 저 멀리에서 아른거린다. 시공간의 간극은 명확한 장면의 기억보다는 기억의 재구성을 통해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때쯤에도 나는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안 좋은 게 안 좋은 거라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삶의 지향점은 지나간 뒤에 발견했을 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렇다고 명확한 목표지향적 삶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찰랑이는 바닷물처럼 때로는 이리로 때로는 저리로 부유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르니 그게 맞다 틀렸다고 할 일은 아니다.
군산도 맛있는 곳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새만금 방조제 바로 앞, 5층 건물 제일 위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정식을 먹었던 곳과 갑오징어를 먹었던 곳이 기억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구도심의 아기자기함과 터프한 공단 지역의 인상이 남아있다. KB은행 팀장 특강에서 향후 주목해야 할 곳으로 서울에서는 광화문과 용산을, 지역에서는 군산을 꼽았다. 부산항이 더는 해운 물류를 감당하기 어렵고, 중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군산항과 군산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군산은 역사적으로 가장 뼈아픈 식량 수탈의 전진기지로서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철학과 선배와 동기가 이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 지명은 낯설지 않다.
@2. 장마의 시작
제주와 남부지방 비소식이 있었다. 내가 운전하고 다녀갔던 10년 전 그 길을 오늘은 후배님 차를 얻어 타고 간다. 대전 근처를 지날 때만 해도 비가 긋는 것 같았는데 식사장소에 도착하기 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식당 안으로 들어온 뒤 천둥번개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다. 백반기행에서 추천받은 식당으로 들어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빈자리가 거의 없다. 메뉴는 새우매운탕과 메기 매운탕 두 종류. 민물 새우를 내어놓는 집이 흔하지 않아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새우매운탕을 선택했다. 7가지 반찬이 먼저 등장한다. 애호박무침과 가지무침을 맛보니 그동안 쌓아 올린 내공을 알 수 있다. 하나만 맛을 봐도 음식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3. 새우 얼갈이 시래기 매운탕과 영양돌솥밥
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막걸리 맛을 봐야 한다. 군산막걸리를 한잔 맛본다. 막걸리 맛은 물맛이 좌우한다. 달지 않고 시원한 식감과 반찬이 잘 어울린다. 열무는 익을 대로 익었지만 퍼지지 않고 단단히 뭉쳐진 상큼함을 선사한다. 나는 남도 음식의 매력을 젓갈에서 찾는다. 김치와 열무김치는 젓갈의 향이 살짝 묻어있어서 너무 좋다. 호박무침과 가지무침, 열무김치를 리필한다. 적당한 양을 내놓고 필요하면 추가하는 곳이 좋다. 영양돌솥밥과 새우 매운탕이 등장한다. 7가지 반찬도 알찬 구성이라 빈 틈이 없어 보이는데, 매운탕과 함께 도토리묵무침을 내어주신다.
시래기와 새우 추가메뉴가 있어서 의아해했는데 곧 이해가 되었다. 수십 마리의 민물 새우와 그득한 얼갈이 시래기를 보니 이름을 다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우 얼갈이 시래기 매운탕이라고. 부드러운 시래기의 식감은 입안에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자작하게 새우와 시래기 사이에 스며들어 있는 국물을 낚시질하듯 한 술씩 먹는다. 점심에는 밥을 잘 안 먹는데 이 매운탕은 밥과 먹어야 그 깊은 맛을 알 수 있다. 민물 새우는 머리는 긴 수염이 있어 분명히 구분되는데 몸통과 꼬리는 구분할 수 없다. 씹을 때 단맛이 배어 있다.
바닷물과 민물은 염분에 의해 구분된다. 민물은 염분이 없지 않고 그 함량이 낮다. 민물은 좀 더 맑고 깨끗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지표면 약 4분의 3 정도가 물로 덮여 있는데, 민물은 약 2.5%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이라고 한다. 새우에 배어있는 단맛은 얕은 수심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육지의 자양분과 민물의 상호작용이 새우의 삶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얕은 곳에서 깊은 단맛을 만들어내는 조화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라고 잠깐 생각해 보았다.
영양밥에는 병아리콩과 렌틸콩, 호박씨, 검은콩이 들어 있어서 건강미가 물씬 풍긴다. 거의 다 먹을 때쯤, 비 때문에 늦게 도착한 후배님이 식사를 하는 동안 옆에서 누룽지와 반찬과 시래기를 좀 더 맛본다. 여운이 많이 남는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