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더운 여름날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카페에 들렀다.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의 매력적인 맛에 놀랐다. 촉촉하면서도 달콤하고 시원한 셔벗과 같은 느낌과 함께 단맛이 최적화되어 두세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중용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처음에는 아이스크림만 오며 가며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여 아이스크림과 같이 번갈아 맛을 보았다. 아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피와 아이스크림과의 상관관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커피를 한 모금 먹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으니, 커피가 깔아준 밑자락에서 아이스크림 맛이 더 선명해졌다.
아이스크림을 밑자락에 깐상태에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커피의 고소하고 약간은 씁쓸한 맛이 두 배로 증폭된다. 이 밀당의 발견을 통해 새로운 맛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은 수박이다. 그런데 수박을 고를 때 늘 운에 의지해야 한다. 올여름에도 두세 번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나니 수박과 여름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망고가 자리 잡았다. 냉동망고는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고 한 입 먹으면 시원함에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에어컨 없이 14년째인데 나로서는 냉동망고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막내딸방에만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아직 그 방으로 피난 갈 생각은 없다.
오늘 막내딸이 아르바이트했던 카페에 같이 갔다. 망고 빙수를 먹기 위해서다. 과연 이 빙수는 그 비주얼부터 압도적이고 하얀 얼음가루가 아니라 망고가 들어간 얼음가루가 특이하다. 이번에도 빙수와 커피를 번갈아 먹는다.
빙수와 과일망고의 달고 시원한 맛이 밑자락을 깔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커피의 쌉쌀하고 고소한 맛이 선명하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뭉툭하고 불안정하게 돌아가는데 오직 빙수와 커피맛만 선명한 것 같다. 이번에는 다시 빙수를 맛본다. 달달한 시원함이 온몸을 적신다. 역시 이런 시원함은 에어컨이 대체할 수 없는 자리다.
내가 누군가를 선명하게 부각해 준 적이 있는지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나서지 않고 밑자락을 깐 적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묵묵히 그러지 않고 뭔가 생색을 내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타인의 존재감은 덜 부각될 것이다. 내가 부각되지 않는 자리에서 타인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약간의 시기심이 일어서 그랬을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그냥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타인의 존재감이 나로 인해 부각되어 그가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행동하고 싶다. 올 가을에는 그럴 날들이 많기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빙수와 커피의 선명한 맛을 음미한다. 아 맛이란 참 묘한 말이다. 맛있다 맛없다로 구분할 수 없는 경계가 구분되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언어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수많은 느낌과 존재와 맛들을 음미 하면 할수록 삶은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그 안에서 내가 한없는 평화와 안식을 갖길 바라며 가게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