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은 2019년 5월에 많이 아프셨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수도권 병원에 계신다. 다행히 어머님께서 힘든 고통을 넘어 치유의 시간을 보내시고 계시다. 그러나, 고향집은 어머님의 빈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빈 집은 1년 반 가까이 쓸쓸한 시간을 보냈다. 아들이 3주 전 고향 집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 잠깐 있다가 올라올 줄 알았다. 거미줄을 치우고 곰팡이를 닦는 수고로움을 안겨준 아들에게 투덜대기도 했다. 1주일 있다고 올라올 거 아닌가라고. 그런데 아예 군대 가기 전까지 고향집에서 살겠다고 한다. 대학 학업은 모두 비대면 수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말에 약간은 수긍이 갔다.
그러나 겨울에 춥고 혼자 방 4칸 집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춥고 고독하면 답은 도망밖에 없는데. 그 자리에 나를 대입시켜봐도 어려울 것 같았다. 고독 혹은 외로움은 그 나이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라고 괴테는 얘기했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런데 기특하게도 아들 혼자 지금 잘 버티고 있다. 나는 집이 돌아가는 상황에 관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똥 손이다. 못하나 제대로 박지 못해 손톱이 빠지는 경험을 한 이후로 못 박는 것조차 아내의 몫이 되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맥가이버>보다 훌륭한 처남이 있다. 처남은 전기, 에어컨, 배수관, 보일러를 비롯해서 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나는 집에서 벌어지는 온갖 문제에 대해 모른 척 일관했고 아내는 모질게도 처남을 소환했다. 그때마다 처남은 맥가이버가 되어 우리 집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곧바로 해결해주었다.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아들이 어떻게 처남과 통신을 주고받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처남이 어렵게 시간을 내서 아들이 살고 앞으로 살게 될 고향집을 손봐주겠다고 나섰다. 가장 먼저 아들이 고향집에 설치하다가 만 헬스 장치를 조립하는데만 4시간이 지났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고 멀뚱멀뚱 지켜보다가 조심스럽게 점심을 권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는 몸 전체를 위축시킨다. 따뜻한 이불만으로는 그 위축을 견딜 수 없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랜만에 칼국수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오후 2시 30분이어서 기다리지 않고 착석했다. 닭칼국수를 먹고 단번에 반했던 가게였다. 닭칼국수는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메뉴인 데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닭의 잡내를 싫어하는 나의 가벼운 비위 때문이었다. 처음 어머님께서 안내해주시는 대로 방문했던 이 가게에서 호기심에 주문한 닭칼국수는 닭이라는 식재료가 어떻게 국물에 녹아들고 칼국수 면발과 감자와 조화되는 지를 제대로 가르치는 유치원 교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닭고기에 비위를 거슬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음식을 먹음으로써 떨쳐냈다.
아늑한 국물 안에서 나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나이 든 뮤지션이 90이 넘은 나이에도 독주를 마신다고 자랑스럽게 인터뷰하던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를 떠올렸다. 그는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 닭고기 수프로 해장을 한다고 했다. 닭고기 수프 대신 닭칼국수는 비린내가 없고 약간은 걸쭉하면서도 맑은 맛을 아낌없이 나에게 선사해 주었다. 세상에 닭곰탕도 아니고 닭칼국수를 내가 먹을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오늘 나는 멸치 칼국수를 주문했다. 바다내음을 맡으면 몸이 좀 더 따뜻해질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한 술의 국물은 그 음식을 만들기까지의 복잡한 과정과 레시피와 노력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많은 것을 나는 느끼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음식에 동화되고 스며들고 어느 순간 음식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으슬으슬하고 쌀쌀한 날씨에 노출된 사람들의 몸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맛을 나는 느꼈다. 훌륭한 음식은 사실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 멸치 칼국수를 반 정도 먹을 무렵 기억을 떠올려 보리밥을 따로 주문해야 하냐고 여쭈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보다. 한 그릇 푸짐하게 내주셨다. 이 보리밥은 그냥 주신다.
고추장은 매움의 날카로움은 무디게 만들고 시골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그런 아늑한 맛이다. 보리밥에 많이 비벼도 자극적이지 않다. 아들은 한 숟갈 뜨고 말았지만 처남과 내가 그 한 그릇을 다 먹었다. 보리밥은 밥알을 씹어먹는 재미가 있다. 보리는 위(胃)를 온화하게 하고 장(腸)을 느슨하게 하며 이뇨(利尿)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는 옛날부터 보리가 심장보 호제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보리의 식이섬유인 '베타글루칸'은 대장에서 담즙과 결합한 뒤 몸 밖으로 배설되면서 혈중 지질 수치를 낮추며 혈당 조절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리밥 두 숟갈은 칼국수에 넣었다. 보리쌀의 탱글탱글한 식감과 칼국수 면발의 부드러운 맛이 입안에서 묘하게 논다.
멸치 칼국수에 다시 집중한다. 칼국수 면은 직접 밀가루를 반죽해서 만들었다. 바다내음이 깃든 멸치국수에 후추를 조금 뿌려서 김치와 곁들인다. 김치는 겉절이에서 방금 벗어나 아삭한 느낌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새로 한 김치의 맛이 난다. 고춧가루는 좋은 것을 사용한 게 확실하다.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칼국수 면발과 조화를 이룬다. 국물은 남김없이 다 먹는다. 가격과 가치를 생각해볼 때 만든 분들의 정성이 가득할수록 그 음식의 가격에 상관없이 무한대의 가치를 발견하곤 하는데 이 칼국수집에서는 더 이상 가격을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칼국수 국물의 한없는 깊이를 느껴본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삶에 가치를 하나 더한 오후의 풍경은 촉촉한 빗줄기에도 아늑했다.
칼국수를 먹고 난 오후에 작업 속도는 훨씬 더 빠르게 진척된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공사와 집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전기공사에 이르기까지 그저 나는 처남의 손길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을 뿐이었다. 칼국수는 오후 내내 우리의 에너지를 지속시키고 있었다.